한 사람의 개인사가 곧 한국의 광고사가 될 정 도로 한국 광고를 대표하는 인물이 있다. 바 로 김석년 회장. 해외에서는 세년 킴(Senyon Kim)으로 더욱 유명다.1934년생인 그 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6.25전쟁을 겪 고, 1956년 1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가 1967년에 귀국한다. 1971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회사로 불리던오리콤의 전신인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에 입사하면서 광고계 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40여 년간 광고업 에 종사해 온, 그야말로 한국 광고계의 산증인 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회고록 ‘김석년과 그의 광고시대(윤태 일 지음, 늘봄)’에 따르면, 김석년 회장은 합동 통신사에 기획국 부국장 겸 제작부장으로 입 사한 이후, 동서식품 맥스웰 하우스 커피광고 와 OB맥주 광고, 퍼모스트 아이스크림, 유한 킴벌리, 피어리스 화장품 등을 진행했다. 그 는 1970년 초반까지 매체사는 물론 광고주들 도 광고대행사에 대한 이해가 별로 깊지 않다 는 점을 토로하며, 광고대행사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10여 년간 오리콤 대표이사로 재직 당시, 광고의 전 문성 강화를 위해 공채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뽑기 시작했고, 직원 교육에 힘썼다. 오리콤이 ‘광고사관학교’라고 불린 까닭이다. 1980∼90년대는 한국광고계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발전하면서 광고산업이 크 게 도약을 이뤘고, 동시에 한국광고 시장을 개 방하라는 압력이 거세지며 본격적으로 국제화 시대를 준비해야 했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광 고 시장에 대해서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개 방을 주장했다. 하지만 선연이라는 독립광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글로벌 다국적 광고회사들 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자 선연 역시 레오버 넷과 합작을 추진했다. 훗날 그는 당시 한국의 광고 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지 못해 오히 려 광고산업의 질적, 양적을 성장을 늦추게 됐 다며 후회하기도 했다.
김석년 회장의 업적에 대해서는 한국 광고의 국제화를 위해 직접 해외로 나가 발로 뛴 점을 가장 높게 평가받는다. 광고관련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깐라이언즈 등 국제광고제 심사위원 으로 참가하고 국제기구로부터 그 공로를 인 정받아 수많은 공로상을 수상한 것이다. 무엇 보다 광고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인 국제광고협회 세계회장으로 동양인 최초로 선 출되어 세계 무대를 누비며 국제광고계를 주 도했다. 2015년 11월 아시아 광고연맹은 김 석년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는 시상식을 거 행했는데, 그를 “열정적인 활동가”라 칭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한국광고협의회(현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 을 역임했으며, 애드페스트(Adfest) 창립운영위원장, 제14차 아시아광고회의(AdAsia) 운 영위원장, 아시아광고연맹(AFAA) 아시아태평 양 미디어포럼(APMP) 창립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된 제35차 IAA 세계대회 서울(1996년)과 아시아 광고대 회 제주(2007년) 개최 유치에도 힘썼다. 해외 에 한국 광고를 가장 앞장서서 알린 것이다.
이처럼 김 회장의 행적은 그대로 한국 광고의 도전과 성취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오리콤 30년사에 따르면,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 사돼 있다. “그에게는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대 한 탁월한 식견이 있었으며, 좋은 광고를 만들 기 위한 뜨거운 열정이 늘 내부에서 살아 용솟 음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비즈니스를 위해 광 고인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 했다.” 후배들에게 늘 귀감을 보이신 김석년 회장의 자랑스런 한국광고인상 수상을 진심으 로 축하하며, 그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