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계단처럼
글 ·그림 임태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제일기획
글 ·그림 임태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제일기획
결국, 흑백 요리사를 보았습니다.
너무 유행하면 괜히 보기 싫어지는 비뚤어진 성격 탓에,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정주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미루고 미루다가… 호기심을 못 참고 결국 흑 백요리사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 정말 잘 만든 프로그 램이더군요. 비슷한 업종이다 보니 제작과정이 얼마나 고 된 작업이었을지가 먼저 보이더군요. 그 많은 인물을 어 떻게 섭외한 걸까. 등장인물 오디오는 어떻게 땄고 편집 했을까. 도대체 카메라는 몇 대가 들어간 걸지. 어디에다 저만한 세트장을 지은 건지. 편집은 몇 개월이 걸렸을지 정말 가늠이 안 되더군요. 잘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엄청 난 노력과 고민이 보이는 결과물이더라고요.
프로그램의 만듦새도 놀라웠지만 개인적으로 더 놀라웠 던 건 등장인물들의 실력입니다. 짧은 시간에 요리를 해 내는 실력. 간단한 재료를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능력, 그 미묘한 차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의 노련함까지. 정말 감 탄 밖에 안나오더군요.
양파를 써는 컷만 봐도 느껴지더라구요. 저 칼질을 얼마 나 오랫동안 해온 걸까? 액체질소, 진공 팩을 쓸 생각은 어떻게 한 걸까? 70분 안에 가능하다는 걸 감으로 아는 걸까? 요리라는 직업이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한명 한명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또 한 번 감탄했습니 다. 와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 많구나. 실력은 그냥 느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꿈을 위해 서 노력해 온 각각의 스토리텔링이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뭐 이 글을 요리하시는 분이 읽을 리는 없겠지만 광고인 의 한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합니다. 꾸벅.
흑요리사, 백요리사의 스킬도 놀라웠지만 저는 심사위원. 특히 안성재 쉐프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특히나 인상적이 었습니다. 평가를 하는데 본인만의 정확하고 확고한 철학 이 느껴진달까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테크닉은 의미없 다고 생각한다.” “저는 음식의 익힘정도를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평가에 앞서 자신의 판단 기준을 정확하게 전달 하고 그 기준에 무엇이 모자랐는지 설명을 하고 당락을 이야기하는 그 과정이 인상 깊더군요.
실력은 계단처럼는다.
“아쉽지만 탈락입니다.”
아마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저런 매너로 이야기 해 준다면 탈락해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요리라는 것이그렇잖아요 누구나 ‘입맛’이라는 취향이 존재하고, 판단기준은 각자 다 다를 텐데 저렇게 조리 있 고 간결하게 판단기준과 당락의 여부를 정리하다니! 크리 에이티브한 직업이라는 것과 ‘취향’이 판단하는 데 큰 역 할을 한다는 점이 광고와 비슷해서 더 와 닿았나 봅니다. 멋지십니다. 광고라는 크리에이티브를 업으로 삼는 입장 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해야 할 때 나름대로의 기준과 생각을 잘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할 듯 합니다.
사실 저는 요리는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냥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닐까. 흑백요리사를 보고 참 무식한 생각이었다고 반성하는 중입니다. 실력은 그냥 느는게 아니더라고요.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노력했을까? 그 사이에 몇 번의 좌절이 있었을까 그 고통 의 시간을 버티느라 얼마나 많은 맘고생을 했을까. 암튼 잘 만든 콘텐츠 덕에 여러 생각을 하는 요즈음입니다.
실력은 계단처럼는다.
찾아보니 어떤 드라마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여튼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말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실력은 계단처럼 는다.” 제가 몇 년째 하고 있는 신입사 원 교육 때마다 하는 얘기죠. “광고라는 게 참 그렇더라 조금 알겠다 싶다가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가 어느 날 또 뒤돌아보면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가… 또 다시 정체되어 있는 거 같고. 그러다가 뒤돌아보면 시작 할 때보다는 몇 계단 올라와 있는 그런 느낌이더라.”
물론 이렇게 얘기하니 뭐 제가 한참 높은 계단에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펜로즈의 무한계단 같달까요. 요즘 다음 계단이 안 나와서 고생 중인데.. 실력은 계단처럼 는다라는 말은 팩트임에 동시에 일종의 신념 같은 거 같네요. “실력은 계단처럼 느는 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