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글 송한돈 | 사진·팡고TV 촬영 유희래 ·김예원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여기어때, 슈퍼콘, 동원참치까지. 이 광고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도 없을뿐더러 한 번만 불러본 사람도 없는 중독성이 강한 CM송으로 유명한 캠페인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모두 한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 바로 모이스트플레이의 정시웅 감독이다. 수더분한 첫인상이지만 그의 대답 곳곳엔 또렷하고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 수많은 대답 속에 자신의 퍼스털 컬러는 블루(Blue)라며, 촉촉하고 파란 광고를 만들어 세상이 조금이라도 즐거웠으면 한다는 정시웅 감독. 치밀한 전략가이자 사랑스러운 연출가인 그를 만나보자.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동원참치, 슈퍼콘,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최근에는 손흥민과 있지(ITZY)의 콜라보로 탄생한 메가MGC커피 등 다양한 CM송 광고를 연출한 모이스트플레이의 정시웅 감독입니다.
Q. 많은 CM송 광고를 연출하셨습니다. 그중 인상 깊은 CM송으로 ‘사과 톡톡톡~ 트로피카나!’가 생각나는데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모모랜드 주이 씨가 부른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캠페인의 경우 낯선 생경함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만큼 제작 과정이 순탄치 않았어요. 첫 콘티를 받고 생(生)크로마키에서 무반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의 콘티를 CD님에게 전달드렸을 때, 너무 복잡하니 단순하게 가자고 완곡히 거절하셨죠. (웃음) 지금은 이런 비주얼이 낯설지 않지만, 그때는 그런 광고가 없었거든요. 더 나아가 한 인물이 데칼코마니처럼 복제되면서 프렉탈 구조로 전개되는 비쥬얼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에 일일이 콘티를 그려가며 설득했습니다. 고집을 부려 세상에 나왔고 온라인용으로 제작됐지만, TV광고까지 집행돼 좋은 결과까지 얻은 이후로 새롭고 다양한 광고를 제작할 수 있었던 분수령이라 생각해요.
Q. 새롭고 낯선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 어느 정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나요?
스스로 마이너리티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느끼기에 굉장히 재미있으니 나와 같은 사람들은 무조건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음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새롭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의 확신 정도는 있었습니다. (웃음)
Q. 많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설득하시는 것 같아요. 스스로 광고감독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감독은 커뮤니케이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선 제 주장을 설득하는 영업맨이 되고, 촬영장에서는 100명 정도의 사람을 지휘하는 중대장의 역할을,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선 동기를 심어주거나 독려해 주는 동기부여가가 됩니다. 단계마다 주어진 커뮤니케이션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CM송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대행사에서 전달된 메시지를 받고 노래가 가진 색깔을 먼저 상상해요. 빛이 나는 색의 음악, 밤의 음악 등 그 노래가 가진 색깔을 상상하고 분류한 다음, 하나씩 쌓아 나갑니다. 예를 들어 주어진 광고 메시지가 노란색을 띈다면 그에 맞는 음악을 찾고 가사를 작성하면서 원하는 색깔을 끌어냅니다. 그 후에 오디오 PD와 상의해 그 색에 맞는 CM송을 만들어 내는거죠. 그 후에서야 비주얼을 생각해요. 즉, 음악의 성격을 정한 다음 비주얼을 만들고 영상을 구현해 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Q. CM송 광고 제작 과정에서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재창조하는 경우가 많아 자유도가 높은 편입니다. 러프한 콘티에선 색깔을 쉽게 찾는 경우도 있지만, 안무처럼 디테일한 요소는 감독이 결정하고 조합해 제안합니다. 더 즐겁고 다채로운 방향으로 재창조하는 일이 감독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동원참치,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여기어때 광고가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Q. 흥미롭네요. 많은 화제를 몰고온 여기어때 캠페인도 이와 같이 진행됐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됐나요?
‘벚꽃 엔딩’ 뮤직비디오 연출했던 인연으로 장범준 씨와 2021년 여기어때 캠페인에서 CM송을 제작했습니다. 그 이후 2022년 여기어때 ‘여름’ 편을 거쳐 2023년 여기어때 ‘해외’ 편까지 연출했습니다. 2023년 여기어때 ‘해외’ 편은 ‘백 투더 퓨처 OST’처럼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상상하며 작업했습니다. 하늘을 활공하면서 오케스트라와 중창단의 보이스가 섞여 웅장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더군다나 해외에 가지 않고 완성해야 해서, 공항에서 찍어야 하나? 라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합성’을 하되, 보통 아이 뷰(Eye View)로 보는 구도를 버드아이 뷰(Bird-Eye View)로 전환해 환상적인 풍경들이 펼쳐지도록 제안했습니다. 와이어로 띄운 인물들을 각 특정 장소와 합성해서 제작하게 됐고, 촬영 당시에는 모델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해 큐 테이크(Q-Take) 방식을 통해 실제 어떻게 합성이 되고 있는지 실시간 피드백을 주며 진행했습니다. 출연하신 분들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주기도해서 즐거운 작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Q. 아이디어 제안도 많이 하시는 것을 보니 광고를 매우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광고 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져요.
결정적인 두 광고가 있는데요. 손예진 씨가 출연한 포카리스웨트 광고를 보고 ‘광고 감독이 되면 산토리니에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하고 가벼운 기대가 있었어요. 연출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무라 타쿠야가 모델로 나온 리바이스 엔지니어드진 광고 였습니다. 당시 한국 광고 사이에서 일본인 모델이 처음 보는 구도
로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어요. 그 광고를 보고 언젠가 저런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그 이후 광고를 전공하고 바로 광고 감독이 되셨나요?
바로 광고 감독이 되진 않았어요. 당시엔 광고가 싫었거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덕션에서 일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을 셋업 해주는 사람이구나. 광고가 아닌 다른 형태의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영상을 직접 찍고 편집하고 연출하는 일을 찾아 5년간
광고를 떠나게 됐죠.
Q. 광고가 싫으셨다니 의외에요. 광고를 떠나 무슨 일을 하셨나요?
돌이켜보면 저의 정체성을 찾으러 떠났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방송국 일을 했는데, 일주일 동안 한 방송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업무가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생각이 들어 마케팅 에이전시로 옮기게 됐죠. PD로 근무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상품을 노출하는 바이럴 영상(그 때는 UCC)을 제작해 싸이월드에 업로드 하는 일을 했어요. 그 이후에 음악을 좋아하니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디지페디’라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결국 제 적성에는 잘 맞진 않더라고요. 돌아보니 광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걸 알게 돼서 다시 광고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Q. 5년이란 공백기를 거치고 광고를 다시하기란 쉽지 않았을텐데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무작정 시작했어요. 클라이언트도 없지만 월세 150만 원짜리 사무실을 계약했어요. 그리고 ‘여기는 광고 프로덕션이고, 나는 광고 감독이야’라고 스스로 선언하고, 작은 광고부터 시작해서 점차 늘려 나갔습니다. 결국 내뱉었던 말을 이루기 위해 광고 감독이 됐고, 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지금의 모이스트플레이(MOISTPLAY)가 만들어진거죠. ‘모이스트’와 ‘플레이’는 ‘드라이’와 ‘워크’의 반대말인데요. 제가 하는 일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이 아닌 ‘촉촉하고 즐거운 놀이 같은 일’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짓게 됐습니다.
Q. 정체성 중에 음악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광고에서 음악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광고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6할 정도로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빌드업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영상의 무드를 형성해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도 해요. 심지어는 그 시대의 트렌드를 담는 동시에 만들기도 해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
합니다.
Q. 트렌드를 담고, 트렌드를 만든다는 점이 공감됩니다. 개인적으로 음악 활동도 하시나요?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0년엔 대표 여름 곡이 없었습니다. 나몰라패밀리가 부르고 K.JUN이 프로듀싱한 ‘여름 앞에서’라는 곡을 만들었는데요. 아시아태평양뮤직그룹(APMG)이라는 뮤직 레이블을 설립했는데, 이름의 규모와는 달리 흑석동, 이태원도 못 벗어나는 처지가 재밌는 포인트였죠. 코로나 시대로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작사에 참여했고, 여름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뮤직비디오에 담았어요.
물론, 쫄딱 망했지만 광고라는 제약을 벗어나 제가 생각하는 여름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전달하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언젠가 다나카처럼 떡상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웃음)
Q. CM송으로 유명해졌지만, 그 근간을 지탱하는 건 감독님만의 ‘위트(Wit)’라고 생각해요. 위트있는 광고를 만드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마이너리티한 사람이라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없어요. 키도 작고, 공부도 못했어요. 그런 와중에 재미있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환영받는 것처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위트’를 선택한거죠. 광고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세련된 비주얼을 보여주는 광고, 고급스러운 자동차의 무드를 살리는 광고 등 다양
한 광고들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광고에 위트를 넣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제 삶의 방식이 광고에 투영 된거죠.
Q. 생존을 위해 위트를 선택했지만, 즐거움을 전달하면서 얻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반응은 ‘피식’입니다. 저의 광고 연출에서 박장대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피식할 수 있는 상황들이 대부분입니다. 광고 곳곳에 위트적인 요소를 심는 이유는 제가 설계한 방향대로 ‘피식’ 웃어주시거나 댓글로 위트적인 요소를 찾아 즐겁다고 피드백 주실 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이 노력하고 고민해서 ‘피식’할 수 있는 부분을 광고에 넣고 있습니다.
Q. 많은 노력만큼 스트레스도 상당할텐데요. 주로 어떻게 해소하나요?
매일 1km 수영을 하고 있어요. 1km를 쉬지 않고 하다 보면 되게 괴로워서 오히려 몰입하게 돼요. 지금 몇 번째 턴인지, 호흡은 적당한지 등 수영에 집중하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잊게 돼요.
그리고 테니스를 하는데요. ‘눈은 뇌랑 가장 가까워서 눈은 뇌와 같다’라는 제 나름의 이론으로 공을 ?아 눈을 움직이면 뇌를 활성화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Q. 스트레스 관리에도 나름의 철학이 있으시군요. 그렇다면 광고를 계속 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사실 광고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특별하게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 일만큼은 나의 능력치가 부족해도 상대방과 협업을 통해서 무언가 완성 시킬 수 있어요. 또많은 사람과 협업하면서 예전의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과의 재회, 동경하던 인물과의 만남 등 소중한 인연들이 연결돼 같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카타르시스가 있어 광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계속 이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쓰시나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아쉬움의 갭을 계속 줄여 나가는 것이 연출자의 몫이라 생각해요. 그렇기 위해선 다음 작품을 잘 만들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해요. 감독의 노력으로 상쇄할 수 있는 부문이기에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인정하고 오답 노트 삼아 나의 부족함을 넘어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을 감독으로써 매일 신경 쓰
고 있습니다.
Q.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직업병이 있나요?
자꾸 일상을 일처럼 만들어요. 지나가는 사람의 스토리를 추측해봐요. 왜 뛰어가는지, 무슨 일 때문에 웃고 있는지를 상상하게 돼요. 심지어는 등산을 가도 자꾸 무언가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폰으로 편집해 BGM도 넣어 보고, 나름대로 기승전결을 만들어요. 심지어는 손을 흔들어보라고 연출도 합니다. 그렇게 릴스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공유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웃음)
Q.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잘하는 것들에 집중해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간흐름에 따라 애매하게 성장하는 걸 경계하고 있어요.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더 잘해서 다양한 포맷에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에드가 라이트(Edgar Wright)의 베이비드라이버 같이 음악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리드미컬한 연출의 드라마타이즈 광고나, 위트가 섞인 블랙코미디 장르, 상상력에서 기인하는 SF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