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측면, 도봉구 방학동엔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 김기조의 작고 네모난 작업실 ‘기조측면’이 있다. 간판도 없어 얼핏 지나칠 무렵, 제주에서 막 올라온 그가 갈색문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안녕하세요, 김기조입니다. 읽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것이 카피라 믿는 이노션월드와이드의 홍리라 카피라이터는, 오랜만에 만난 ‘동지’의 인사에 강을 건넌 수고도 멀찌감치 잊어버렸다. 유리병 하나도 보물처럼 간직하는 그, 도심 속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그. 소문처럼 ‘존나 공정한’, 불친절한 기조 씨 맞나요?
그건 귀여운 ‘앙탈’이에요
홍리라 카피라이터(이하 홍) 세상에, 겨우 찾아왔어요. 완전 여행이야!
김기조 작가(이하 김) 그래서 제가 작업실로 오신다 하면 한 번씩 만류를 하는데…. 밖이 많이 덥죠? (주섬주섬 물건을 정리하며)앉으세요. 제주도에서 막 올라온 터라 정리를 못했네요.
홍 동네가 제법 특이해요. 요즘 보기 힘든 ‘진짜 동네’ 느낌? 간판에 영어가 없어서 신선하네요.
김 오래된 동네라서요. 골목도 다 옛날 구조고.
홍 10년 동안 방학동 주민이었는데, 스튜디오까지 집 근처로 고집한 이유가 있나요? 강남보다 강북 정서가 더 좋다든가 하는.
김 음, 사실 계기는 되게 단순해요. 제대하고 나서 집에서 작업하면 답답하니까 근처에 독립된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죠.
홍 방금 전에도 동대문에 있다 오셨잖아요. 예전보다 사람을 많이 만날 텐데, 불편하진 않으세요?
김 하루에 웬만큼 돌아다니는 건 적응의 문제니까요. 아직까지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도 언젠가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확실히 여긴 외부인이 찾기 위한 공간은 아니다 보니.
홍 흠, 그러고 보니 여긴 정말 ‘작업’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군요. 기조씨의 아지트 같기도 하고. 근데 뭔가…물건이 엄청 많네요!?
김 하하, 네. 물건을 잘 못 버려요.
홍 저는 오래되고 낡은 건 최대한 버리는 주의거든요. ‘잘 버려야 잘산다’는 말을 신봉하는 제 기준에서는 버려야 할 물건들이….(웃음)
김 음, 버리는 속도보다 괜찮은 걸 가져오는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어떤 걸 버리기 전에 한 번 제동장치를 거치는 것 같아요. 처음 봤을 때 ‘아, 시간이 누적되면서 오랫동안 나이 먹을 만한 물건이겠다’란 생각이 들면 바로 버리기 아쉽죠. 옛날엔 다 마신 유리병이나 캔도 예뻐 보이면 쉽게 버리지 못했어요.
홍 다정하시네요. 한 동네에 오래 머무는 것도, 물건을 소중히 갈무리 하는 것도 그렇고. 존나 공정한 사회! 이런 작품만 봤을 땐 다소 까칠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김 성격 자체는 오히려 유들유들해요.
홍 사실 제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 ‘싫은데요’거든요. 페이스북엔 ‘좋아요’ 버튼밖에 없으니까, 싫어도 싫다고 할 수 없는 환경을 꼬집어보고 싶었어요. 예의 기조 씨 작품을 주욱 보면 확실히 공격성 아닌 공격성이 느껴져요.
김 약간은 투정부리듯 귀여운 ‘반작용’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가 겪는 일상이 언제나 올곧고 정직하고 모범적이지는 않잖아요. 누구나 마음속에 삐딱한 부분은 있으니까요.
홍 레터링 말고 카피도 직접 쓰시는 거죠?
김 제 개인적으로 발표하는 작업은, 그렇죠. 말의 방향성이 뾰족한 것이 흔히 말하는 ‘모났다’는 것인데, 제 작업은 그 방향이 탄력적인 이미지예요. 어느 쪽으로 공격이 들어와도 튕겨낼 수 있는. 어물쩍 넘어가는 척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뼈가 있는, 능글맞은 타입이죠. 애늙은이에요.(웃음)
홍 그런 작업이 때론 괴롭지 않나요? 저도 나름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어떤 걸 새로 만들어야 할 때, 무척 괴로운 순간이있어요.
김 그쵸. ‘발견’의 즐거움이 분명 있지만, 그 발견을 위해 고행이 시작되면 괴롭죠. 시간이나 일정 같은 상황이 따라주지 않고 억지로 뭔가를 쥐어짤 때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홍 하지만 직업으로 선택한 이상, 내 아이디어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정해진 시간까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일이 나의 책임이자 의무!
김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런 아이디어는 대부분 어떤 우연한 기회에 포착하게 되죠. 사실 제주도에 다녀온 것도 그런 활동의 일종이었어요.
기조 씨의 네모네모 취향
홍 그럼 길을 걷다가 ‘어라, 저 말 괜찮은데?’ 하고 수집하시는 건가요?
김 우연한 채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구체화 내지 결정화라고 봐야 해요. 그 당시 생각하는 사고의 덩어리가 있는데. 그것이 촘촘히 압축되면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작업을 할 때 우선 많은 안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범위를 좁혀나가지는 않아요. 처음에 커다란, 두루뭉술한 덩어리를 만들고, 그걸 천천히 다듬어나가는 방식이죠.
홍 흠, 그럼 작년에 저희팀과 함께했던 ‘캐논 EOS M 캠페인’ 때는 어떠셨어요? 이제는 솔직히 말씀해주실 수 있죠?(웃음)
김 서체를 만드는 작업이었죠. 과정 자체는 굉장히 부드러웠어요.
‘김기조’는 본명인 김경준에서 ‘ㄱ’과 ‘ㅈ’을 따온 예명이다. 한창 군생활을 하던 김경준과는 독립된 개체로 작업하고 싶어 만든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런 김기조는 어느 순간부터 고스란히 그의 자아가 됐다. 김경준이란 캐릭터가 오히려 밀려나고, 기조가 주류가 되었을 정도. 아마 전체 생활에서 김기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추측한다.
블루스 더, BLUES
붕가붕가레코드에서 기획한 우리나라 최초의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 강산에, 김태춘, 깜악귀, 하헌진 등 총 12팀이 참여했다. 고전음악에 가까운 블루스는 최근 가장 트렌디한 음악으로 각광받는 분야. 김기조가 앨범 재킷 디자인을, 눈뜨고코베인의 보컬 깜악귀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별일 없이 산다
2009년에 발매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 1집. 사진 속 앨범은 600세트로 제작한 LP 한정판이다. 최근에 한 작업 중 하나인 ‘싸구려 커피’를 필두로 예상을 넘어선 큰 인기를 끌었으며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란 평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김기조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씨 없는 수박
최근에 한 작업 중 하나인 블루스 뮤지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첫 번째 앨범. 트로트 스타일 블루스와 달리 고전적인 어쿠스틱 블루스를 다양하게 담아냈다. 직접 사온 수박을 활용한 재킷 디자인이 눈에 띈다.
타이포그래퍼 김기조
1984년생으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디자이너이자 곰사장의 소울메이트. 1인 스튜디오 ‘기조측면’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 ‘뺀드뺀드짠짠’ 3집 기획으로 고건혁 대표와 인연을 맺은 뒤 붕가붕가레코드에 소속된 아침, 눈뜨고코베인, 생각의 여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장기하와 얼굴들 등의 음반 디자인을 담당하는 한편, 한글레터링을 중심으로 다양한 그래픽아트를 전개해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작업 없지만, 그래도 ‘김기조’를 널리 대중에 알린 장기하와 얼굴들 첫 정규 앨범 ‘별일 없이 산다’에 가장 애착이 가는 편. 전반적으로 시크한 외모와 심하게 진지한 성격 이면에는 칭찬 앞에서 과감히 무너지는 앙탈청년 ‘김경준’이 있다.
홍 정말요? 그럴 리가 없는데. 까칠에 까칠을 더해도 부족했을 텐데!
김 아뇨, 정말로.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프로세스 자체가 공유되는 작업이니까. 과연 내 방식이 공유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 시간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빼면, ‘자원이 고갈되었다’는 류의 괴로움은 적었어요. 아, 광고회사에서 왜 ‘시안’이 필요한지는 확실히 알겠더군요.
홍 결말이 훈훈하네요.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확실히 고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자극이 분명이 남는다는 거예요. 그럼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계세요?
김 얼마 전에 ‘서울재즈페스티벌 2013’에서 포스터를 비롯한 비주얼 작업을 진행했어요. 잠깐 한숨 돌리고 붕가붕가레코드의 새로운 블루스 뮤지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앨범 디자인을 마쳤습니다. 잠깐만요, 여기 앨범이….
홍 씨 없는 수박 김대중? 뭔진 모르지만 위트 있네요. 어머, 재킷에도 진짜 씨가 없어요!(웃음)
김 그게 블루스 작명법이래요. 1920년대 미국 블루스 뮤지션에서 유래한 것인데, 맨 뒤에는 역대 대통령 이름을 넣어야 하고요. 맨 앞은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단어를 붙여요. 블루스 뮤지션 중에 태생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고도 하고…. 그리고 가운데엔 과일 하나를 끼워 넣습니다.
홍 ‘블라인드 레몬 재퍼슨’ 이런 식인가요?
김 네. 근데 김대중 씨는 원래 본명이 김대중이에요. 작년에 낸 ‘블루스 더, Blues’란 컴필레이션 앨범이 인연이 되어 붕가붕가레코드에 합류했죠. 음, 지금은 7월에 있을 개인전시와 8월 말~10월에 열릴 ‘타이포잔치’라는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네요.
홍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가 열리는군요! 그때도 기조 씨 특유의 ‘장방형’ 작품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요즘 타이포그래피는 탈장방형이 추세라던데 기조측면의 ‘측면’이 주는 사각형 느낌도 그렇고, 장방형 디자인을 활용하는 것도 그렇고…. 의외로 각 맞추는 걸 좋아하는 타입?
김 직각이나 수직, 수평이 가장 단순한 규칙이긴 하죠.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보면 정서적인 느낌이 있어요. 어딘가 기괴하고, 추레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과거,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거기에 있죠. 그런데 우리는 그걸 부정하듯이, 뒤로 미루듯이 기억에서 지워나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잖아요.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이후엔 사라질지도 모르는 맹목적 가치를 좇아가며 살잖아
요. 그런 거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반작용으로서의 의식이 평소에도 있긴 해요.
엄마가 꼭 예뻐서 좋아하나요
홍 이렇게 꾸준히 ‘한글’을 소재로 삼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 음, 그게…계기라고 하면 ‘뺀드뺀드짠짠’이겠네요. 교내 밴드의 컴필레이션 음반인데, 한참 선배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었어요. 2집까지 나와 있는 상황에서, 지금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인 곰사장을 만나 함께 3집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뺀드뺀드짠짠이란 고유한 이름을 굳이 영어로 바꿔 쓰기도 어색하니, 정해진 명칭을 제일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홍 그러고 보니 붕가붕가레코드엔 유독 한글 이름의 밴드가 많네요.
김 ‘관악청년포크협의회’라든지 ‘그림자궁전’, ‘브로콜리너마저’…. 그들 역시 대부분 대학교에서 만난 인연이었거든요. 공교롭게도 그들의 음반을 디자인하다 보니 어느새 제가 한글 레터링을 하고 있더라고요.
홍 다른 언어보다 한글로 작업하는 것이 좋으신 건가요?
김 편하죠. 저한테 익숙하고. 가장 잘할 자신도 있고.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쓰고 있으니 의미나 맥락, 오묘한 정서를 가장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잖아요. 다른 언어로 해보라면 사실 자신이 없어요.
홍 흠, 그럼 혹시 한글 자체가 가진 조형미나 우수함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시는지?
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아름다운 글자…라고 우리는 추어올리려 하는데, 글쎄요. 합리적인 문자라고는 생각해요. 지구상에 남아 있는 문자 중 몇 안 되는 인공문자니까.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제조한 문자잖아요. 하지만 ‘아름다움’이라. 비교 자체가 무리 아닐까요? ‘한글 강낭콩체는 영문 헬베티카보다 아름답다’는 우스꽝스러운 명제가 나올 테니까요.
홍 우와, 기대보다 날카로운 반응인데요. 서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가 보기엔 영문 서체보다 한글 서체의 다양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공문자라 알파벳보다 그 역사가 짧은 탓인지.
김 서체 디자인은 모든 경우의 수에 해당하는 ‘조형적 규칙’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알파벳과 한글은 음절을 구성하기 위한 방식이 굉장히 다르죠. 영문은 글자 오른쪽에 바로 다른 글자가 붙잖아요. 근데 한글은 옆에도 붙고, 아래에도 붙고, 심지어 ‘받침글자’까지 있죠. 여기에 맞춤법엔 없지만 받침글자가 붙는 경우의 수, 받침글자 다음에 또 받침글자가 붙는 경우의 수까지 생각하면….
홍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네요. 경우의 수를 논하는 의미 자체가 없는 수준이겠어요. 그래서 알파벳보다 한글 서체 디자인이 어려운 것이군요.
김 어딘가 평범하고 무난한 것밖에 나올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저는 서체보다는 정해진 몇 개의 글자에 적용되는 조형원리를 만들어서 시각적으로 보다 정제된 한글 레터링을 보여주려고 해요. 한글은 나에게 부여된 조건이니까, 대단히 사랑할 것까진 없지만 ‘인정하는’ 태도는 필요하기에. 그 방식이 부딪히는 것일 수도 있고 서로 북돋울 수도 있겠지만요.
지속 가능한 그리드질(?)을 하려면
홍 붕가붕가레코드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표방하니, 수석 디자이너인 기조 씨는 언제까지 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 적 없으세요? 이를테면 ‘지속 가능한 그리드질(?)’ 같은 거.
김 네, 뭐. 공식적으로는 ‘무직’이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어디에 있어도, 그 고민은 하지 않을까요? 날 때부터 증여자본을 타고난 소수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예전에 2년 반 정도 게임회사에서 그래픽 작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업의 수명 자체가 짧고 피상적이더군요.
홍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무언가를 남기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는 느낌.
김 네, 그 당시 필요한. 그 당시 논리에 맞춰서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는 느낌. 나이를 먹어서도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활동이 아니었죠.
홍 나이 먹을 수 있는 물건을 수집하신다더니, 일에도 적용되는 논리였군요. 이젠 기조 씨 취향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요.
김 유들유들해도, 어쩔 수 없는 애늙은이인가 봐요.(웃음)
홍 청년 김기조의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궁금한데요?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김 예전엔 ‘장래희망이 뭔가요?’란 질문이 귀찮아서 농담으로 건물 사는 거라고 했어요.
홍 ‘건물주’가 꿈이었나요?
김 네, 이젠 진지하게 건물주가 꿈이에요. 대한민국, 특히 서울이라는 곳에 ‘지속 가능한’ 가치가 정립되지 않는 이유가 사람들이 사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거든요. 지역문화가 발생하려면, 오래 살 땅이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부동산이니,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휩쓸릴 수밖에 없죠.
홍 가로수길이 뜨니까 거기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세로수길로 밀린 것 처럼요?
김 네, 홍대가 뜨니까 괜찮은 가게들이 상수나 합정, 망원까지 흩어진것처럼. 무언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쫓아내는 것이 부동산이잖아요. 거기서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지역을 기반으로 교류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을 한번에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건 부동산이니까.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하나의 피난처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어요.
홍 그것 참, 소신 있는 건물주네요.
김 역설적으로 제가 건물을 산다면, 그건 부동산이 안정되었을 때의 이야기니까요.(웃음) ‘우리 동네’란 생각이 들면 맘에 안 드는 걸 발견해도 ‘이 동네 그냥 뜨고 말지’라고 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개선해나가려하겠죠. 지역문화는, 거기서 발생해요.
홍리라 카피라이터에게 ‘카피’는 도처에 있는 모든 것이다. 길거리 안내판도, 화장실 낙서도, 김기조의 작품도 모두 카피다. 어떤 거창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읽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카피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좋아하는 카피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가장 곤혹스럽다고 했다. 이를 듣던 김기조 역시 ‘나는 실시간으로 변화 중인데, 확정적 대답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COLLABORATION] 김기조, 공정한 청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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