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2 스파익스 아시아 2013] 디지털 시대,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새로운 방법
광고인들에게 인사이트란 염원의 대상이지만 얻기는 쉽지 않은 미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녀를 얻기 위해 어떤 이들은 연구를 한다. 도서관에 찾아가 관련 서적을 읽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들은 본인의 감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증거를 수집하고 연구를 하는 방법이나 감에 의존하는 방법 모두 틀리지는 않지만, 각각의 방법이 한계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할 수 있는 더욱 완전에 가까운 방법론이 나온다면 어떨까? 빅데이터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두 가지 접근법 간의 대립
광고인들도 소비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두 가지 접근법을 사용해 왔다. 정량적 혹은 계량적 접근법과 광고 기획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접근법이 그것이다. 먼저, 정량적 접근법은 소비자 이론에 기반한 가설들을 사회과학적 조사 방법을 적용해 검증해 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구조화된 질문에 대해 소비자들은 본인의 기억에 의존한 왜곡된 대답을 하거나, 진실을 가리는 ‘착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냉장고를 선택하는 기준을 묻는 질문에 대해 소비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내구성’ 또는 ‘신선도’라는 대답을 해왔다. 그러나 냉장고의 주 타깃인 주부들이 정말 내구성과 신선도 때문에 특정 냉장고를 샀을까? 정량적 접근법은 아는 것을 검증하는 것 이상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 직관에 의존하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검증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냉장고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면, 주부들이 삼성전자 지펠 냉장고를 선택한 이유는 제품의 내구성이나 신선도 유지가 아닌 이승기였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욕망은 이승기가 보여 주는 ‘관심’이었던 것이다. 비록 화면 넘어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문제는 설문 조사 결과가 이러한 진실을 밝혀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감이 뛰어난 한 사람의 기획자에게만 의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광고인들은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 답은 빅데이터에 있다.
빅데이터, 대립의 중재자가 되다
두 가지 인사이트 접근법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빅데이터다. 빅데이터는 광고인들에게 말하지 않거나 말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숨겨진 욕망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는 무엇일까? 빅데이터라는 말을 듣게 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빅’이라는 단어에 압도되어 ‘빅데이터=엄청난 양의 데이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빅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크기만이 아니다. 빅데이터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수십에서 수천 테라바이트 정도의 거대한 크기를 갖고, 여러 가지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으며, 생성-유동-소비(이용)가 몇 초에서 몇 시간 단위로 일어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 분석이 어려운 데이터의 집합.’ 이 정의에서 빅데이터의 세 가지 특징인 3V(Volume, Velocity, Variety)가 보인다. 단위를 떠올리기조차 힘들 정도의 양(Volume),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초 단위로 빠르게 쌓이고 있는 속도(Velocity), 숫자, 글자,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의 정형화된 혹은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Variety)가 그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를 하나 소개하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LA타임스, IBM, USC 애넌버그가 공동으로 개발한 오스카 센티미터(Oscar Sentimeter)는 트위터상에 나타난 오스카 시상식 관련한 수만 개의 메시지 어조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분석해 오스카 수상자를 예측하는 도구다. 2012년의 경우 영화제가 열리기 전 15주 동안 트위터에 올라온 시상식 관련 메시지 분석 결과를 보니 메시지 수와 긍정적 평가 측면에서 메릴 스트립이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메릴 스트립은 그해 <철의 여인>으로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 빅데이터가 매력적인 것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발신한, 그들의 왜곡되지 않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광고인들은 소비자들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통해 진리에 조금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소비자의 삶을 간섭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줬다.
기존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여 주다
동서식품의 카누 광고는 기존 인스턴트 커피와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인스턴트 커피광고를 보면 주로 ‘맛’이라던가 ‘잠을 깨우는’ 등의 커피라는 제품 자체가 지닌 기능적인 속성을 강조한다든지, 커피를 둘러싼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 주는 감성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다.
그러나 카누는 ‘원두커피 같은 맛’이라는 기능적 접근도 아니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에 대한 광고도 아닌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라는 콘셉트를 전달했다. 그리고 이 캠페인을 통해 동서식품은 시장에서 압도적 1위가 되었고, 캠페인은 2013년 Asian Marketing Effectiveness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누 캠페인이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기획이 보유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 분석 시스템(Social Media Analysis, 이하 SMA)* 결과가 카누의 성공 요인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만의 공간인 소셜 미디어상에서 소비자들은 커피의 ‘맛’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매력적인’, ‘예쁜’, ‘유명한’ 등의 이미지와 연관된 단어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결국 한국의 커피 소비자들이 소비하고 싶은 것은 원두커피 같은 맛이 나는 커피가 아니라 ‘카페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는 세련된 나’라는 이미지인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잘 읽어내고 표현한 카누는 시장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마켓 셰어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인사이트는 기존의 정량적 방법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매년 실시하는 대규모 정량 조사 결과는 소비자가 커피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이 ‘맛’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결과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는 설문지에 정해져 있는 항목에 답을 한다. 또한 그들은 때로 대충 답하거나, 실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래야 할 것 같은 답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에 따라 다른 답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설문 결과는 소비자에 대한 진실의 전체 그림을 보여 주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이에 반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반응들은 기억이나 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그때그때 그들이 느끼는 소비자의 생각과 감정들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왜곡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이 1억 건을 넘어서는 모수에 의해 검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빅데이터를 통해 발견한 내용들은 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사이트를 보게 해준다.
빅데이터는 또한 광고인들로 하여금 소비자의 삶과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일기획의 생명의 다리 캠페인은 누구나 아는 성공 캠페인이다. 2013년 칸에서 티타늄상을, 스파익스 아시아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캠페인이기도 하다.
이 캠페인이 이렇게 큰 이슈를 만들고 성공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한강의 다리를 미디어로 활용했다는 점도 무척 크리에이티브하고, 다리에 쓰인 메시지도 감동적이지만 이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소비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갈증을 잘 채워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보험 캠페인들이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에 초점을 뒀다면,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전달한 메시지는 이 시대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었다. 한국의 자살률과 우울증 환자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도 지니고 있다.
소비자들의 목소리인 SMA 결과를 봐도 지난 한 해 동안 우울이나 자살 등의 단어들이 포함된 버즈량이 점점 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아픔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보험이 얼마만큼을 보장해 주는지 어떤 혜택을 주는지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공감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그들에게 위로의 역할을 해준 것이다. 각박할수록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보험사도 예외가 아닐 텐데, 상품을 팔고 브랜드를 포장하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는 큰 성공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최근 산업계에서는 ‘착한 기업 되기’가 화두이다. 저마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혹은 CSV(Creating Shared Value) 활동을 하겠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착해보이기만 하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들의 진정한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나’와 연관이 있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의 CSR 혹은 CSV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빅데이터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생명의 다리 케이스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진실에 가까운 답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빅데이터 안에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르네상스적 인간을 꿈꾸며
빅데이터는 단순히 다양한 데이터 형태로 이루어진 큰 데이터가 아니다. 빅데이터를 통해 도출된 이야기들은 엄청난 양의 버즈 데이터를 분석했기 때문에 양적으로도 검증이 된 내용이며, 동시에 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소비자들의 순수한 속마음이기도 하다. 빅데이터가 정량적 접근과 직관적 접근 사이의 중재점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빅데이터는 ‘분석적 시각의 주관을 데이터로 객관화’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가 광고에도 쓸 만하고,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숫자와 친한 사람도, 데이터 마이닝이나 분석 같은 것을 해본 사람도 아니다. 빅데이터는 우리 회사 어떤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일 테지만 나하고는 큰 상관없는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이가 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르네상스적 인간은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과 솜씨를 지닌 사람을 통칭한다. 미술, 의학, 수학, 물리, 천문, 지리, 기계 등 서로 연관될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능통했던 다빈치야말로 르네상스적 인간의 대표라 할 수 있다. 다빈치가 즐겨 사용했던 황금률은 예술가들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사용됐던 방법이다. 다빈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디지털 시대는 광고인들에게 한 가지 분야에만 능통한 인간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르네상스적 인간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데 빅데이터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 예술이나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빅데이터가 크리에이티브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김미경 프로 _ 커뮤니케이션연구소 mk1123.kim@samsung.com
스파익스 아시아 ·
디지털 시대 ·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새로운 방법 ·
제일기획 ·
김미경 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