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Pen잡은루이스 / IT 칼럼니스트. 카카오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 <한 권으로 읽는 4차 산업혁명> 외.
2019년 가을, 좋은 기회에 <트렌드코리아> 오프라인 강연에 참석했다. 생소한 키워드가 여럿이었는데, 그중에 ‘초개인화’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까지는 브랜드가 주도하는 대량 소비시대였다면 이제 초개인화라는 뉴노멀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몇 년이 흘렀고 초개인화 트렌드는 보다 세밀하고 정교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저격 상품이 출시됐을 때 맞춤형 문자를 보낸다거나, 카드사나 보험사에서 온전히 내가 처한 상황에 맞는 정보를 보내주는 방식 역시 고객 중심의 초개인화 마케팅이라 하겠다. 김난도 교수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특정할 수 있는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나와 닮은’ 혹은 ‘나와 같은’ 부류에 일반화된 상품이 현존하는 시대 속에서 ‘유일무이한’ 맞춤형으로 제공될 수 있는 상품은 없는 걸까?
이러한 초개인화 트렌드에 따라 제조업계 역시 다품종 소량생산 바람이 불기도 했다. 초개인화 키워드와 동시에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 현상도 한몫했다. 다중적 자아가 ‘TPO(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갖게 되니 이러한 부류에게는 더욱 세분화된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했을 것이다.
개인의 니즈를 반영한 맞춤형 제품 생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며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 줄을 이었다. 초개인화 역시 다르지 않다. 특정 브랜드 위주로 돌아가는 대량생산 시대는 점차 소비자 중심으로 변했고, 초개인화 소비 형태가 자리 잡게 되면서 개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른바 ‘초맞춤화(Hyper Cumstomization)’ 그리고 ‘프로슈머(Prosumer)’라는 새로운 키워드까지 등장했다. 인공지능부터 헬스케어,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기술까지 4차 산업혁명 안에 존재하는 키워드 역시 개인 맞춤형으로 이어진다. 특히 3D 프린팅 기술 확산은 이러한 초개인화 트렌드를 꾸준하게 이어갈 테크놀로지다.
(좌부터 시계방향) 브리즘의 산업용 3D 프린터, 초기 3D 프린터 출력물 형태, 완성된 안경테, 브리즘의 맞춤 안경 제작 과정 / 출처 breezm.com, @breezm.eyewear
사례를 들어보자. 지금 나는 안경을 쓰고 있다. 앞자리 선배는 눈이 좋지 않은지 렌즈가 굉장히 두껍다. 친한 후배 하나는 얼마 전에 라섹수술을 했다. 물론 그전에는 잘 닦지도 않던 안경을 매일 쓰고 다녔더랬다. 나를 포함해 이렇게 3명 모두 얼마 전까지 정말 비슷하게 생긴 안경테를 쓰고 있었다. 닮지 않았지만 은근히 닮았다는 말까지 들어봤다. 안경테 자체가 오래되기도 했고 굳이 트민남이라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지만 이를 핑계 삼아 트렌디한 제품이 있는지 구글링을 해봤다. SNS를 사용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상품이 리타게팅 되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그런 와중에 개개인의 얼굴핏에 맞는 안경을 제작해준다는 브랜드를 발견했다. 사람마다 얼굴형이 다른데 안경은 획일화되어 있으니 이를 깨부순다는 브랜드의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3D 스캐너를 통해 얼굴 형태를 분석한다. 안면을 분석하고 맞춤형 안경을 제작하는데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맞춤 제작을 한다. 이 회사는 창업에 도전하며 3D 프린팅 생산라인을 먼저 설립했다. 이들의 3D 프린팅 테크놀로지로 개인의 얼굴에 딱 맞는 맞춤형 안경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브랜드의 이름은 ‘브리즘’이다.
(좌부터 시계방향) 로컬모터스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만든 자율주행 전기차 올리,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자동차 스트라티, 3D 프린팅 기술로 제조되는 무인항공기 래피드 플라이트 M2 UAS / 출처 로컬모터스, rapidflight.aero
과거 로컬모터스(Local Motors)의 자율주행 전기차 역시 화제였다.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진 전기차의 이름은 ‘올리(Ollie)’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누구나 디자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전 세계에서 500여 명이 동참해 만들었다. 로컬모터스는 폐업 수순을 밟았지만 미국의 무인항공기 제조사인 래피드 플라이트(Rapid Flight)가 지적재산권을 인수했다. 이들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무인항공기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제품군 또한 확장할 예정이다.
3D 프린터를 활용해 맞춤형 안장을 제작하는 자전거 회사 Posedla / 출처 posedla.com
체코의 자전거 회사인 Posedla는 3D 프린터를 사용해 맞춤형 안장을 제작한다. 모든 사람의 엉덩이와 좌골 등 신체의 특성이 각기 다른 점을 이용해 더 편안한 라이딩을 돕는 제품을 고안해냈다. 맞춤형 안장의 이름은 ‘Joy Seat’로 제품을 주문하면 개인의 엉덩이 모양을 찍어낼 수 있는 키트를 배송받는다. 여기에 앉아 자신의 신체 모양을 본뜬 후 보내면 이를 활용해 3D 프린터로 안장의 모양을 제작해 제품을 완성한다.
사실 3D 프린팅 기술은 의학 분야에서 널리 퍼져나갔다. 치과에서는 임플란트, 보철물, 치과용 크라운 등 의료용 모델을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3D 프린팅 사례 중 인공장기(Artificial Organs)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장기는 어느 하나라도 심한 손상을 입을 경우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3D 프린터로 이러한 인체 조직을 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간이나 심장, 혈관 등 인공조직 혹은 장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세포가 생존할 수 있도록 특수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바이오 잉크’라고 불리는 재료를 활용해 각각의 조직이 서로 연결돼 물리적, 생물학적 특성이 그대로 재현되어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이라고도 한다. 그동안 재생이 어려웠던 장기를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통해 환자 개인에 제대로 맞출 수 있도록 특수제작해 이식하고 되살리는 것을 두고 누군가는 혁명이라고도 한다.
한층 가까워진 마법의 테크놀로지
3D 프린팅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언급된 이후 더욱 각광받고 있다. 어떤 재료를 부어 넣느냐에 따라 새로운 물체가 나타나는 3D 프린팅을 ‘마법의 테크놀로지’라 칭하기도 한다. 1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증기기관 같은 기계가 세상에 등장했고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기가 생겨났고 인터넷이 발명됐으며 전 세계를 잇는 초연결사회를 살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와 같은 흐름 속 3D 프린팅 기술은 초개인화 시대를 한층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SF 드라마 시리즈 <더 페리퍼럴> 속 주인공인 클로이 모레츠는 고객들이 원하는 걸 제작해주는 3D 프린팅숍에서 일한다. 이처럼 생소하고 신기한 기술이었던 3D 프린팅은 점차 우리 일상과 산업 전반에 가까워지고 있다. 드라마처럼 3D 프린팅숍이 편의점만큼 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시의적절하게 트렌드를 이끄는 테크놀로지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