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 교수, 소비행동학자
소비자들은 왜 셀프 분석에 빠졌을까? 몇 해 전 시작돼 지금쯤 사라지겠거니 싶었던 MBTI는 이제 대학에서 기숙사 룸메이트 구할 때도 쓰고, 팀 프로젝트 멤버 구성할 때도 쓴다. 학생들은 심지어 강의계획서에 교수님의 MBTI가 적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으로 교수님이 선호하는 평가 방식, 교육 철학,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학자들이 MBTI를 그렇게 신빙성을 갖고 볼 자료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상관없다. 심지어 기업들 역시 MBTI를 직무와 인재상을 묘사할 때 쓰고 있다.
그런데 단지 MBTI만이 유행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다양한 셀프 분석이 인기다. 한 회 10만원이 넘는 유료 퍼스널 컬러, 헤어 스타일 진단 서비스도 예약을 잡기 힘들 정도며, 내 몸의 뼈대 모양이 어떤지 골격 진단 서비스도 받고 유전사 검사도 신청한다.
(출처 : 셔터스톡)
돈을 들이더라도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비용을 치르더라도 나를 정확히 깊이 알게 된다면 시도하기를 원한다. 왜 그럴까? 이런 흐름은 단기로 끝날까? 지속될까? 이런 소비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가 실행하는 업무에 함의점이 있을까? 소비문화 현상의 근저에 흐르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알면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셀프 분석 서비스에 탐닉하는 것, 자아와 관련된 소비는 결국 자기를 소비하는 것이다. 소비를 보통 ‘닳아 없어지다’, ‘사용해 더 이상 못 쓰게 된다’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소비의 개념이 사용해 없어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몰입하고 함께하고 참여하고 주목하고 시간과 돈을 써서 소비의 대상이 되는 상품, 장소, 존재, 아이디어를 크고 빛나게 만드는 것도 소비이다.
(출처 : 셔터스톡)
쉬운 예로,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빛나게 하는 덕질 소비를 생각해 보면 소비의 개념이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자신에 대해 깊이 알기 원한다 (심화). 자세히 알기 원한다(구체화). 남과 다른 나만의 특성이 있을지 궁금해한다(개별화). 이를 통해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나를 발견하길 원하고, 발견된 나를 잘 가꿔 내가 가진 가능성 중 가장 편안하고 최선의 버전인 내가 되고 싶어한다. 즉 셀프 진단 서비스를 통해 심화, 구체화, 개별화를 통한 자아 발견, 자아 유지, 자아 과시를 한다.
남과 다른 나를 정의하기 위한 소비
심리,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자아 탐색 소비를 진행하는 것은 식별의 이유 때문이다. ‘동조’와 ‘비동조’는 소비자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주요 동기 중 하나다. 한국의 문화는 특별히 동조성(conformity)을 강조해 왔다. 이런 획일적인 문화 안에서는 나에 대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나만이 가진 독특함을 알아내고 그것을 가꾸고 선언하고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독특해지고 싶은 욕망(need for uniqueness), 비동조 욕구는 소비자들이 자신들만의 하위 문화, 서브 컬처를 만들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아에 대한 관심이 많은 글로벌 Z세대 중에서도 유난히 셀프 분석에 대한 서비스가 한국에서 만개하는 것은 이제껏 만연해 왔던 획일화에 대한 비동조(non-conformity)현상이 소비로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셔터스톡)
선택지가 넓어진 것 또한 셀프 분석 유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발레코어룩, 블록코어룩, 고프코어룩 등 온갖 코어룩이 유행이며, 심지어 나의 학생들은 성수동 갈 때 입는 룩과 홍대입구 갈 때 입는 룩을 구별해 입기도 한다. 이럴수록 소비자들은 나만의 고유한 것은 무엇인지를 찾는다. 일단 흔들리지 않는 내 것이 있어야 변형과 응용도 자유자재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줄여 비용 아끼는 셀프 분석
장소와 상황에 따라 변경가능한 옵션이 풍부히 많으면 바꿔가며 시도해 본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래서 나한테 가장 잘 맞는 것은 또 무언가 하는 질문이 든다. 그러니, 자신만의 것, 자신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을 찾아 중심에 두고 주변부를 변형해가는 시도를 한다. 예를 들면, 웜톤이나 쿨톤 같은 나의 장점이 드러나는 세팅은 정해두고, 그에 맞춰 다이소와 NARS의 화장품을 섞어 쓰고, 여러 룩도 시도해 본다.
(출처 : 셔터스톡)
기능적 측면에서는 효율적이다. 메이크업 제품도 옷도 수십 수백 가지인데 나와 잘 어울리는 제품을 찾아가려면 시간과 돈이 든다. 셀프 분석 서비스를 활용하면 돈이 든다지만 실제로 나를 탐색하며 겪을 비용 지불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더 이득이다. 상대방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사고방식을 유형화시켜 단기간 내 상대를 파악하면, 타인을 알아가는 데 드는 시간이 준다.
젊은 세대들은 소녀시대가 한 반을 지배하던 시대를 살지 않았다. 같은 반 20명의 친구들이라도 아무도 모르는 외국 래퍼의 팬이거나 잘 모르는 애니메이션 덕후도 있고 5세대 아이돌 그룹들의 파편화된 지형에서 자기들만 아는 팬클럽에 드는 것도 보았다. 즉 스무 명의 취향이 다 다름을 보고 자랐다. 그 스무 명의 취향 모두가 만족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니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나를 정확히 알아야 내게 꼭 맞는 것들을 선택하기 쉽지 않겠는가.
젊은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나를 탐구하는 소비들은 실용적이다. 이후의 관련 선택을 쉽고 빠르게 내려줄 수 있도록 돕기에 ‘아 나는 외향적이야. 나는 이런 소통방식을 선호해. 그러니 나랑 같이 팀플할 사람, 기숙사 같이 쓸 사람 이런 사람이 편해’라고 선언한다. ‘난 이런 스타일로 살고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살아. 그러니 난 이런 직장 문화를 가진 인턴십과 정규직 직장을 가질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존중하기 위해선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겠어
존중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다. 나도 너를 존중할 테니 너도 나를 존중해 주길 소비자는 기대한다. 특히 나부터 나 자신을 존중해야 하는데 이러기 위해선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소비자의 이런 마음이 자기를 파악해주고 해석해주는 셀프 분석 서비스 선호 현상으로 드러난다. 셀프 유형화 테스트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소비 문화가 자아낸 가장 큰 유익은 내향인이든 외향인이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든 논리로 대응하는 사람이든 ‘고저’가 아닌 ‘고유함’으로 차이를 받아들이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출처 : 셔터스톡)
물론 이런 셀프 분석 서비스들이 가진 폐해도 있다. 자아는 변한다. 확장되기도 한다. 내가 나를 잘 몰라봤을 수도 있다. ‘최선인 나(best of me)’ 버전보다 나와 잘 안 맞아도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본 그 자체가 삶에 활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쉽게 결론 내려 ‘나는 이런 일은 잘 못해’, ‘쟤는 나랑 잘 안 맞아’라며 주어진 틀에 맞춰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장기적 측면에서 손해가 될 수도 있음은 주의해야 한다.
셀프 분석 유행, 브랜드가 할 일은?
셀프 분석에 빠진 소비자를 대하며 브랜드 입장에서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할 일이 생긴다.
첫째, 자아 탐색과 자기 해석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도울 수 있는 도구를 공급하면 사랑 받을 수 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둘째,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자기 정체성이 중요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은 소비자들의 시대이다. 무심코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면 시대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뒤떨어진 기업이라 판단 받을 것이다.
셋째,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보여라. 소비자들은 그 분야의 집약된 데이터를 갖고 있는 기업과 브랜드는 나에 대한 ‘정답(short-cut)’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마치 수능 시험을 준비할 때 전국 1위 인터넷 강사나 입시 전략을 짜주는 컨설턴트가 입시 문제 만큼은 나보다 월등히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나의 현재를 진단해 솔루션을 줄 수 있는 전문가라고 믿듯 말이다. 그러니 자아를 탐색하는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야 고객이 따를 것이다.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 교수, 소비행동학자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교수이자 소비행동학자. 세종도서로 선정된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의 저자다. 주 연구 분야는 브랜드와 소비문화이론으로 Psychology & Marketing, Journal of Advertising,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등 국제저명학술지에 다수 게재하였다. 경영학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며, 학계의 발견을 나누고 필드의 질문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런 연유로 DBR, 제일기획 등 경영전문지 기고와 SK, LG인화원, 현대자동차, CJ, 웅진, KT CS, NH뱅크, 삼성디스플레이연구소등에서 자문과 특강을 진행하며 활발히 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