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CASE] The Great Expectations:2 Essays and 4 Road Creators
INNOCEAN Worldwide 기사입력 2014.06.24 04:53 조회 7381


네 가지 길, 네 가지 삶
Text. Lee Hyun Hwa (Editorial Dept) Photography. Kim Dong Yul

언제부턴가 우리는 길을 걷습니다. 매일 걷던 길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고, 낯선 길의 끝에서 어떤 새로움을 만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걸으면 한계는 무한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있는 서울은, 걷지 않고는 찾을 수 없는 도시니까요. 지금, 서울에서 가장 의미 있는 네 가지의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길 위의 사람도 만나볼 수 있겠지요. 서울, 당신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로마, 빨간 바지, 그리고 새로운 길
Text. Seo Jeong Keun (Creative Director, INNOCEAN Worldwide)
에메랄드색 눈빛의 그 자부심 강한 이탈리아 점원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약 3초간 더 망설인 후에 대답했다. “아이 윌 바이 잇.”
그것은 내가 언젠가는 꼭 살 뺀 후에 입으리라 침만 흘리던 48 사이즈였다. 또한 그것은 색깔이 새, 빨, 간, 바지였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굿 초이스, 잇츠 빤따스틱.” 내가 페라리 레드 컬러 팬츠를 사다니…. 서울에서 이렇게 빨간 바지 입는 남자는 한 명도 없을 텐데 어떻게 입으려고 .
2012년 5월 이탈리아 로마. 나는 그 골목길에서 생애 최초로 빨간 바지를 샀다. 로마의 북서쪽 번화가, 스페인 광장 주변 콘도티 거리(Via dei Condotti) 뒷골목에 있는 BOGGI MILANO(봇찌 밀라노)라는 옷가게에서였다. 그 작은 골목길에서, 언젠가 이탈리아 가면 빨간 바지 하나 사와야지, 했던 나만의 소박한 꿈을 이루고 온 거다. 아니 어떻게 보면 크리에이터로서의 새로운 유연성이랄까, 세상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마인드랄까 하는 것을 얻어온 거다. 생의 새로운 길을 만나고 온 것이다.
나에게 용기를 준 그 이탈리아 점원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내가 피팅룸에서 적당히 편안한 사이즈를 입고 나오면 가차 없이 “낫 꿋(Not Good)!” 하체 여러 곳에 압박감을 느끼며 남우세스러울 정도로 타이트한 옷을 입고 나오면 그제서야 “뻐펙(perfect)!” 3초도 안 걸린다. 거의 자동이다. 표정은 진지하다. 그리고 판결해준다. 경음화 현상이 심한 이탈리아식 발음이다. 낫 꿋! 뻐펙! 또 내가 아래위 완전 똑같은 색을 입고 나오면 “낫 꿋(Not Good)!” 같은 계통을 톤온톤으로 입고 나오면 “뻐펙(perfect)!” 이건 뭐 마치 자기마음에 안 들면 안 팔겠다는 태도다. 그는 사장도 아니다. 점원이다.
패션에 대한 개념과 철학이 확고한 이 이탈리아 선수는 계속 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내가 똑같은 빨간색의 반바지와 긴 바지 중에서 무얼 살까 고민하고 있자, 이렇게 말해준다. “이쪽의 반바지는 휴일에 입으세요. 대신에 비즈니스 할 때나 오피셜한 자리에서는 반드시 이쪽의 긴바지를 입으세요.” 하하하, 빨간색 긴바지는 격식을 차릴 때 입으란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아, 얘들은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구나. 그렇지. 왜 빨간색 바지는 남자가 입으면 안 되지? 왜 빨간색은 격식에 안 맞다 여긴 거지? 왜 분홍색은 여자 것이라고 생각했지? 왜? 왜? 왜? 누가 그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고정관념을 깨준 이탈리아 선수! 너 정말 고마워!
축구만 했다 하면 붉은 악마이고 태극기의 절반도 레드인데, 한국 남자들은 왜 빨간 바지를 못 입을까? 복을 가져다준다며 간판이고 탁자고 죄다 빨간색으로 칠하는 중국 남자들은 왜 빨간 바지를 못 입을까? 한 패션 한다는 뉴요커들도, 단풍의 나라 캐나다선수들도, 빨간 옷의 원조인 산타할아버지의 나라 핀란드 남자들도, 왜 빨간 바지는 선뜻 안 입을까? 아마도 이탈리아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빨간 바지를 입으면 굉장히 튈 것이다. 그런데! 광고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튀고 눈에 띄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빨간 바지 입는다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나 혹시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건 아냐?’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되는 것 같다. 심리학 용어로 창의성의 가장 큰 방해물은 동조성(conformity)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수의 의견에 따르려는 성향, 남들과 다르면 불안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광고의 운명은 남과 달라야 하는 거다. 남과 다름을 불안해하지 말자. 불안한 사람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서울로 돌아온 며칠 후, 나는 빨간 바지를 입고 길을 나섰다. 3분 안에 거리의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어머, 저 남자 바지 색깔 좀 봐!” 거리를 지나 사무실에 들어섰다. 팀의 카피라이터가 단 하나의 짧은 감탄사 ‘헉!’으로 반응한다. 나는 약간 불안해졌다. 하지만 견디기로 했다


나만의 보물찾기가 시작되는 곳, 팔판동 ‘그릴 데미그라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한 보석 같은 추억이 있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어서 아쉬운, 다시 만나면 나만 알고 싶은 그립고 그리운 공간. 그래서 우리는 주말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골목의 끝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그렇게 헤매고 탐험하다 어느 날, 청와대와 경복궁 언저리에 조용히 숨어 있는 팔판동까지 걸음이 닿는다면 드디어 옛 추억과 재회할지도 모른다.
시끌벅적한 삼청동 초입, 청와대 뒷길로 통하는 바리케이트를 슬쩍 비껴나가면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골목이 펼쳐진다. 오래된 돌담 사이로 담쟁이덩굴이 가득하고, 고즈넉한 주택 사이로 갤러리와 카페, 게스트 하우스 등이 보이는 곳. 바로 ‘여덟 판서가 산다’ 하여 이름 붙은, 팔판동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추억의 경양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그릴 데미그라스’가 있다.
그릴 데미그라스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전화를 걸었고, 셰프복을 입은 김재우 대표가 직접 마중을 나온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엔 다들 그러세요. 여기도 골목인데, 한 꺼풀 더 벗기고 들어와야 하니까요.” 무더운 날씨에 땀이 송골송골한 이마를 훔치며 그는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서 한 번 왔던 분들이 계속 오시나 봐요.”
그에게 ‘경양식’은 어린 시절의 특별한 향수를 담고 있다.
맛있게 먹던 경양식집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그는, 아직도 경양식이 인기인 일본을 모델로 삼아 직접 레스토랑을 차렸다. 손수 인테리어를 만지고 소품을 놓기까지 꼬박 3개월. 여백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에 맞게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가 완성됐다. 마치 그의 음식처럼.
“역시 함박이 제일 애착이 가죠. 소스 만드는 것도 일이고, 고기 만질 때도 손이 많이 가니까요. 그래서 가게 이름도 데미그라스 소스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저에겐 ‘경양식=데미그라스 소스’란 향수가 있거든요.” 마침, 예약한 손님의 식사가 끝났다. 강남에서 넘어온 듯한 이 커플에게 그가 주변에 둘러볼 만한 장소를 짚어준다. 남녀는 다정히 팔짱을 낀 채 처음 내딛는 길 사이로 사라졌다.
“여기는 주말에도 삼청동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 않아요. 아주 번화한 거리의 인근에 있으나 굉장히 한산한, 조용한 주택가 같은 느낌이죠. 법적으로 개발규제를 받는 곳이라 지금과 크게 변하긴 어려울 거라 하더군요.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손님들은 레스토랑이 이런 데에도 있다며 무척 신기해합니다.”
딸랑. 도어벨 소리가 울리며 다시 손님이 들어왔고, 그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과 홀 사이의 길쭉한 창문 너머로 고기 치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방금 온 그녀들 역시 길 따라 굽이굽이 탐험하며 이곳까지 당도했을 터다. 파란 잔디와 장독대를 지나, 창문 하나 없이 아늑한 이곳으로. 이제 사람들은 그릴 데미그라스 앞에 팔판동이란 수식어를 덧붙인다. 팔판동 그릴 데미그라스. 그릴 데미그라스는 하루의 깜짝 이벤트처럼, 오늘도 팔판동 골목길에 숨어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재우 (그릴 데미그라스 대표)
20년 동안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 오랜 꿈이었던, 나만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남자. 중국집과 경양식집을 고민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추억의 경양식집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식전에 나오는 사라다빵과 함박스테이크, 비후까스가 인기.
ADD.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8번지
TEL. 02-723-1233(월요일 휴무)


남자의 동경이 여전히 살아 숨 쉬다, 도산공원길 ‘라 까떼넬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잠들어 있는 도산공원 인근은 강남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신사동에 속하지만 ‘구 압구정동’이란 말이 더 잘 통하는 이곳은 갤러리아 백화점부터 이어지는 명품거리와는 다른 품격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로데오거리와는 다른 활기가 꿈틀댄다. 그리고 그 물결의 중심에는 지난 4월, 신개념 오더메이드 숍 ‘라 까떼넬라(La Catenella)’를 오픈한 한태민 대표가 있다. 그는 남성패션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편집숍’이란 개념을 처음 들여온 사람이다.
“이탈리아에서 5년 정도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내 옷을 팔 공간을 찾아봤지만, 럭셔리 브랜드 아니면 저가의 캐주얼 브랜드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그래서 2005년 이곳에 처음 ‘샌프란시스코 마켓’을 열었어요. 그러다보니 또 구두가 아쉬워서 지인들과 합심해 바로 인근에 ‘유니페어’란 슈즈 전문점을 만들었고. 라 까떼넬라는 좀 더 특별한 요구를 하시는 손님들을 위한 맞춤숍입니다. 테일러링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공수한 오더메이드 청바지도 다루고 있지요.”
라 까떼넬라는 ‘chain’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샌프란시스코 마켓과 유니페어, 라 까떼넬라가 한 체인이란 의미와 동시에 슈트의 어깨 부분에 들어가는 유연하면서 탄탄한 스티치를 뜻한다. 그에게 이곳은 상점이라기보다 아틀리에에 가깝다. 그것이 넓은 강남에서도 이곳, 도산공원을 선택한 이유다.
“도산공원 인근, 옛날에는 압구정동이었죠. 우리 세대에게는 어떤 동경의 장소였어요. 가로수길이 좀 더 상권이 발달했지만, 우리 타깃에는 이 장소가 더 맞는다고 생각해요. 우리 브랜드의 메인 퀘스천은 ‘내가 입고 싶은 옷’이니까. 보세요, 로데오거리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지 않나요?”
그는 자신이 만든 브랜드가 고객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길 원한다. 같이 공감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그의 이상 덕분에 한창 20대 때 이곳에서 청춘을 불사른 마흔은 이제 거리낌 없이 구 압구정동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청춘의 장소, 20대의 열정을 덧칠하던 도산공원 인근에서 구두를 주문하고, 슈트를 맞추면서 말이다.
“강남에 사실 이렇게 예쁜 공원이 별로 없잖아요. 이 지역 전체가 하나의 ‘가든’이 되었으면 해요. 예전부터 베이커리가 있었으면 했는데 많이 생겨나서 참 좋고, 카페는 이제 충분한 것 같고…. 아, 동네에 없는, 창의적인 향수가게가 있으면 어떨까요?”


한태민 (라 까떼넬라 대표)
열정으로 가득 찬 20대와, 가장 충실히 일한 30대를 보내고 이제 40이 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 이탈리아에서 배우고 일한 감각으로 샌프란시스코 마켓, 유니페어, 라 까떼넬라를 운영하며 바쁘게 도산공원 일대를 누비고 있다.
ADD. 서울 강남구 신사동 653 4층
TEL. 02-517-3156


Nothing’s between You and Art, 문래동 ‘솜씨’
문익점이 목화씨를 처음 퍼뜨렸다 하여 이름 붙은 문래동은 그 이름처럼 본디 전국에서 가장 큰 방직공장이 자리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부터 철공소가 모여들며 서울의 공업 중심지가 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문래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쇳소리와 땀으로 가득했던 철공소들은 산업구조가 변하며 하나둘 문을 닫았고, 비어 있는 공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들어서며 문래동은 어느새 ‘예술촌’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솜씨(Cottonseed)’는 2년 전 문래동에서 태어난 비영리 문화공간이다. 문래동에 예술의 씨앗을 심어서 널리 퍼뜨리겠다는 취지로 2층짜리 건물을 개조하여 아래층엔 전시공간과 카페를, 위층엔 문래동 예술인들의 아카이브를 마련해 놓았다. 온통 하얀 벽의 공간에 들어서자, 이미 예술인 몇몇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7~8년 전부터 문래동에 이미 작가들이 모이고 있었어요. 여기서 뭘 하면 재미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래동의 창고 역할을 하기로 했죠. 작가들이 저마다 아틀리에에서 작업한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도 필요했고, 작가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통할 장소도 필요했으니까요.”
문래동에 예술인들이 모인 이유는 단순하다. 합정이나 홍대 등에서 작업을 하던 작가들이 점점 올라가는 자릿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찾은 대안이 바로 문래동이었다. 오래 비어 있던 공간이니 월세가 저렴했고, 본디 공장이라 층고가 높아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도 좋았다. 주변 철공소에서 쉽게 자재를 구할 수 있는 점도 한몫했다.

“문래동 작가들이 주로 오지만, 동네 주민과 철공소 단골들도 꽤 많아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재밌어서 오시는 분들이죠. 철공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찌 보면 몇 십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장인이잖아요. 그래서 예술가들과 통하는 부분이 꽤 있어요.”

그녀는 솜씨가 쉬운 공간이 되길 바란다. 예술은 고상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든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페가 큰 도움이 됐다. 선뜻 문을 열고 들어오기 꺼리던 사람들이, 차를 즐기면서 편하게 둘러보게 된 것.

“문래동에 커뮤니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에요. 내부에서 워낙에 활기도 있었고 복작복작했는데, 다만 그것이 표출되고 공개되는 큰 통로가 없었을 뿐이죠. 지금은 작가들끼리 와서 알아서 친분도 쌓고 다음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그래요. 솜씨가 새로운 생각의 허브가 됐다고나 할까요? 처음 의도보다 훨씬 더 그물망이 촘촘하게 자리 잡아 참 뿌듯합니다.”

그녀는 문화와 장소가 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솜씨 같은 공간이 더 많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현재 문래동에서는 작가들이 자기 작업실을 개조하여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아틀리에 겸 전시 공간 겸 작은 파티도 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 아마 운이 좋으면 작가를 직접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녀가 귀띔했다.







김정희 (솜씨 실장)
올 7월이면 꼬박 2년이 되는, 문래동 작가들의 ‘복덕방’ 솜씨를 운영하는 그녀. 전시공간의 확대와 일상 속의 예술에 관심을 갖고 매일같이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다. 문래동의 안주인이자 작가들의 청량제.
ADD.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15
TEL. 02-2637-3313


마니악한 도심 속 아지트, 경리단길 RUFXXX
가끔씩 ‘내 편’이 미치도록 그리운 순간이 있다. 아무 사람이 아닌, 나와 비슷한 ‘동지’들을 만나 위로받고 싶은, 그런 순간 말이다. 대로에 있어 변별력 없는 사람들이 쉬 드나들어도 안 되고, 너무 유명해 문턱이 반질반질 닳아도 안 된다. 꽁꽁 숨겨놓고 나만 알고 싶은 곳, 이 도시 속 나만의 아지트는 어디에 있을까.
이태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태원 경리단길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경리단길에서도 한 골목 들어간 이면도로의 주택가 사이에 감쪽같이 숨어 있는 루프엑스(RUFXXX, 이하 루프)를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만약 알고 갔더라도 방문했던 모든 사람이 100% 재방문을 기약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만큼 루프는 열려 있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친절한 공간은 아니므로.
“이곳을 무어라 부르든, 보는 사람의 몫이죠.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바(bar)보다는 퍼포먼스를 위한 공간이라는 거예요. 매주 금, 토, 일에 열리는 공연이 메인이고, 바는 공연을 보러 오신 손님들에게 케이터링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까요.”
루프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형남 씨의 말처럼, 루프는 단독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 전문 바’다. 아니, ‘바가 있는 클럽’이라 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1층은 카페 겸 바가, 2층은 공연장이, 3층에는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옥상이 있다. 패션사진과 영상을 공부한 그가 디렉팅하는 공연처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미묘하고 매력적인 공간.
“이면도로라 좋았어요. 대로변에 있으면 손님을 막을 수 없잖아요. 이왕이면 우릴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와주셨으면 하니까. 그리고 전 남산이 참 좋아요. 도시 중심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자연과 연결해주는 곳이 드물지 않나요?”
그는 일부러 1층의 테이블을 자유분방하게 배치했다. 동선이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서로 친분을 나누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다. 가파른 경리단길을 올라와 루프까지 찾아와서 인디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성향도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아버지 세대에게 돈이 생존의 목적이었다면, 우리는 그 돈을 어떻게 쓸지 관심을 기울이는 세대죠. 그래서 남들이 좋다는 것보다 내가 좋은 걸 찾고 싶은 욕심, 내 걸 갖고 싶은 기억. 그런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루프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이런 마음이 강할 겁니다.”
그는 청담동이나 홍대와 분명히 다른, 경리단길만의 뚜렷한 문화가 생겨날 것이라 믿고 있다. 한 달에 열 명꼴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모여들지만 아직 비어 있는 공간, 새로운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터내셔널 커뮤니티를 가질 수 없어 답답했던 사람이 대부분으로, 벌써 자기들끼리 파티를 벌이며 친분을 쌓고 있다고.
“지난 2년 동안 무수히 많은 가게가 생겨났다 사라졌어요. 맨 처음 여기 들어왔던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 자기 공간을 잘 지켜나갔으면 해요. 콘텐츠가 있고, 그 뒤에 이야기가 이어져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김형남 (RUFXXX 디렉터)
한국에서 패션사진을 전공하고, 런던에서 영상연출을 공부했다.
‘소비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매주 금~토 저녁 9시부터
50분 동안 소리와 움직임을 결합시킨 ‘데일리 프로젝트’의 공연을 연출,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 중.
ADD.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5-27
TEL. 02-511-2570


고백하건대, 나는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길을 세 개만 꼽는다면 두무개 다리길, 잠수교길, 남산1호 터널로, 보다시피 음악을 볼륨 8 정도로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길들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우습지만 원인은 패션이었다. 맨 다리나 스키니진에 러닝화를 장착하는 룩이 여전히 인기인 때, 나도 마음에 드는 러닝화를 장만했다. 힐을 신고 얼마 못 가 백기를 드는 심정으로 택시를 잡아 타던 때와는 달리, 발을 감싸는 러닝화의 넉넉한 쿠션 위에서 좀 더 여유롭게 길을 걷는 재미가 들었다.

어느 트렌드 서적에서 ‘Next 가로수길’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여느 팬시한 카페나 레스토랑보다 가로수길에서 훨씬 시간을 많이 보내기 시작한 시점이 벌써 5~6년 전이니까, 지금의 가로수길 메인로드가 삼청동의 그것이 겪었던 변화를 답습한 것은 슬프지만 당연하다. 특색 있는 가게들이 세로수길로 옮겨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사실 세로수길의 클라이맥스는 요즘 같은 계절인 것 같다. 날씨 좋은 여름밤, 가게 면적만큼 넓은 테라스가 이어지는 세로수길에는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홍콩 란콰이펑을 처음 가봤을 때의 느낌처럼 이 길은 힙하면서도 왠지 아늑하다. 언덕을 따라 거리 전체를 빼곡히 메운 바들이 테라스를 모두 열어젖힌 채,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엉키며 거리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받아들인 곳. 그곳은 화려하지만 지극히 호의적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민감해야 하는 광고인, 특히 소비자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플래너로서, 핫플레이스의 변화는 흥미롭다. 청담동과 초기 가로수길의 키워드는 거리와의 ‘단절’에 가까웠던 것 같다. 들어 서기 전까지는 일상적인 서울의 거리에 서 있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외부와 단절되어 마치 뉴욕의 트렌디한 바를 방문한 것 같은 공간들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게 개방된 ‘그들만의 리그’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세로수길이나 한남동 뒷길, 경리단길, 상수동 등은 오히려 결혼식 하객 복장으로 방문하기엔 조금 과하다 싶은 ‘편안한 공간’이라는 점이 다르다. 약간 소설을 써보자면, 트위터를 위시하여 페이스북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사람과 공유하는 SNS가 인기를 얻고, 전 세계의 정보를 누구나 어디에서든 접근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구글이 가장 멋진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금의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여러 관념과 문화적 취향이 섞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가장 트렌디한 요즘, ‘단절’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서의 거리가 핫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플래너 ·  핫플레이스 ·  청담동 ·  가로수길 ·  단절 ·  세로수길 ·  한남동 뒷길 ·  경리단길 ·  상수동 ·  편안한공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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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생명을 얻는 사진들
대홍기획 AI 스튜디오는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Non-shooting film 제작 스튜디오입니다. AI를 어떻게 크리에이티브에 녹여낼지, 더 크리에이티브한 활용 방안은 없는지, AI가 끼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은 없을지 고민하며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2023년 광고 시장 결산 및 2024년 전망
2023년 연초 광고 시장에 드리웠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21년 20.4%라는 큰 성장 이후 2022년 5.4% 재 성장하며 숨 고르기로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던 광고 시장이었다. 하지만 발표된 다수의 전망들은 2023년 광고 시장의 축소를 내다보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2023년 광고비는 전년 대비 3.1%p 하락으로 전망됐고, 이중 방송 광고비는 17.7% 감소가 예상됐다.
대홍기획 4월 새 소식
대홍기획이 제작한 롯데그룹의 에코 플래너 패키지(NON-FUNGIBLE 2024 Eco-Planner Package)가 2024 아스트리드 어워즈(Astrid Awards)의 기업 캘린더 분야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아스트리드 어워즈는 미국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 평가기관 머콤(MerComm Inc)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글로벌 기업 및 브랜드 홍보물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3대 디자인 상으로 손꼽힌다.
이렇게 즐거운 축구!_ 백호일레븐
디깅에 진심인 사람들. 좋아하는 게 생기면 다양한 방식으로 씹고 뜯고 맛보는 게 요즘 트렌드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죠. 찐 팬이라면 경기력을 분석해 결과를 예측하고 선수들의 활약을 점치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백호일레븐>! 색다른 참여형 프로그램을 만들어 흥행몰이에 나선 대홍기획 WEB 3.0 사업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4월의 #나이키 #좋좋소 #나타
요즘 뭐 좋아해? 에디터 X가 된 대홍인의 취향 큐레이션
AI로 생명을 얻는 사진들
대홍기획 AI 스튜디오는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Non-shooting film 제작 스튜디오입니다. AI를 어떻게 크리에이티브에 녹여낼지, 더 크리에이티브한 활용 방안은 없는지, AI가 끼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은 없을지 고민하며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2023년 광고 시장 결산 및 2024년 전망
2023년 연초 광고 시장에 드리웠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21년 20.4%라는 큰 성장 이후 2022년 5.4% 재 성장하며 숨 고르기로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던 광고 시장이었다. 하지만 발표된 다수의 전망들은 2023년 광고 시장의 축소를 내다보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2023년 광고비는 전년 대비 3.1%p 하락으로 전망됐고, 이중 방송 광고비는 17.7% 감소가 예상됐다.
대홍기획 4월 새 소식
대홍기획이 제작한 롯데그룹의 에코 플래너 패키지(NON-FUNGIBLE 2024 Eco-Planner Package)가 2024 아스트리드 어워즈(Astrid Awards)의 기업 캘린더 분야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아스트리드 어워즈는 미국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 평가기관 머콤(MerComm Inc)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글로벌 기업 및 브랜드 홍보물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3대 디자인 상으로 손꼽힌다.
이렇게 즐거운 축구!_ 백호일레븐
디깅에 진심인 사람들. 좋아하는 게 생기면 다양한 방식으로 씹고 뜯고 맛보는 게 요즘 트렌드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죠. 찐 팬이라면 경기력을 분석해 결과를 예측하고 선수들의 활약을 점치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백호일레븐>! 색다른 참여형 프로그램을 만들어 흥행몰이에 나선 대홍기획 WEB 3.0 사업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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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연초 광고 시장에 드리웠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21년 20.4%라는 큰 성장 이후 2022년 5.4% 재 성장하며 숨 고르기로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던 광고 시장이었다. 하지만 발표된 다수의 전망들은 2023년 광고 시장의 축소를 내다보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2023년 광고비는 전년 대비 3.1%p 하락으로 전망됐고, 이중 방송 광고비는 17.7% 감소가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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