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금융권 광고 형태는 크게 보면 둘 중의 하나다. 전통적인 금융사로 볼 수 있는 은행은 ’’신뢰’’라는 컨셉트를 중심으로 광고를 해 왔다. 반면에 대표적인 소비금융인 카드사들은 하나같이 ’’폼나는 소비’’를 부추겼다.
한마디로 극과 극으로 광고를 해 온 것이다. 특히나 은행은 고객의 소중한 예금으로 광고를 운영하다보니 흔하디 흔한 빅 모델(Big Model)전략도 상당부분 배제되기도 하였다. 고액의 모델을 기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고객들의 불만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하기야 대부분의 고객은 은행들이 돈을 꽁꽁 아껴서 더 많은 이자로 돌려주기를 바랄테니까... 과거의 은행이 보수적이라는 오해는 상당부분 광고에서 파생되는 이미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4년 조흥은행이 창립 100주년이 되던 해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광고캠페인의 카피는 ’’고객입장에서 고객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백년은행 조흥은행의 의지입니다.’’ 였으며 90년대 하나은행의 유명한 카피도 ’’하나은행과 만나면 든든합니다.’’ 였다. 은행광고에 있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주제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조흥은행광고에는 행장이 직접 출연하였고 하나은행은 애니메이션을 표현소재로 사용하였을 뿐 빅 모델은 기용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예기치 않은 스캔들로 은행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저축의 특성과는 배치되는 소비적인 특성이 부각되어 고객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빅 모델 러쉬, 베이비 러쉬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구조조정바람을 타고 은행의 통폐합이 이어지고 저금리시대를 맞아 은행의 고객수익률이 하락함에 따라 과거의 경향들이 다소 흔들리고 있다.
’’신뢰’’와 ’’수익률’’ 못 지 않게 ’’친근함’’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원빈을 조흥은행은 차인표, 외환은행은 한석규를 모델로 기용하였으며 최근에 제일은행광고에는 축구스타 홍명보가 모델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변화라 할 만하다. 친근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흔히 사용되었던 아기들도 이젠 은행광고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한미은행은 광고에 아기를 등장시켜 친근함과 더불어 신뢰감을 높이고 있으며 국민은행은 ’’금융교육을 잘 받은 아이가 부자가 됩니다.’’라는 컨셉트로 광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광고들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쓰는 것이 미덕이다(?)
은행과는 달리 카드사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카드사의 광고는 대표적인 소비지향적 광고였다.
광고들은 하나같이 멋지게 카드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잘 나가는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곧 능력있는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게 하였다. 삼성카드는 대표적인 배우인 정우성과 고소영을 활용하여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라는 카피와 함께 소비를 부축인 적이 있다.
이 광고는 당시 유행하던 ’’보보스’’의 이미지와 월드컵 붐을 타고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카드발급을 남발하고 이에 따라 연체율이 급증하자 이러한 형태의 광고는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에 직면하였다. 게다가 연체된 카드비를 충당하기 위한 각종 흉악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카드사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광고를 고수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카드는 사회의 필요악으로 지탄을 받게 된 것이다.
항상 함께 하는 친구가 되기 위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카드사들은 광고의 컨셉트를 바꾸기 시작했다. 단지 소비만을 유혹하는 존재가 아니라 필요할 때 항상 도움이 되는 친구의 모습을 필요로한 것이다.
친근함을 강조하여 카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우회적으로 소비를 다시 장려하려고 한 것이다. 삼성카드는 최근의 광고를 통해 삼성카드로 결재하여 병을 고치고 건강해진 아버지와 이를 지켜보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슬로건도 ’’당신 가장 가까이에’’로 바꾸었다. 불과 수 개월 전에 보여 주었던 광고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변화였다. LG카드도 2002년 6월 직접적인 카피를 활용하여 TV광고를 변경하였다. ’’마음에 들지만 갚을 수 있는지’’를 따져 보라던 이 광고는 마치 공익광고를 연상시킬 만큼의 분명한 메시지로 주목을 끌었다.
현재는 잘 알려진 CM을 개사해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라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외환카드도 예외가 아니다. 이정재라는 모델이 등장하여 주말할인프로그램과 성공의 상징으로서의 카드의 기능을 주장하던 이 회사의 광고도 최근에는 결혼하는 딸과 아버지의 정을 테마로 의미있는 순간과 카드의 관계를 친근하게 맺어 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밖에 국민카드도 이러한 경향에 동참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금융권 광고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적인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고객에 좀 더 밀접하게 다가가려는 기업 본연의 자세에 접근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높았던 금융권도 광고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더불어 낮아지고 친근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