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에는 때아닌 버버리코트와 중절모 바람이 불고 있다. 김두한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 야인시대의 열풍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술자리도 마다하고 일찍 들어가기 바쁘고, 스포츠신문들은 앞다퉈 톱기사로 야인시대의 가십거리들을 다루기에 바쁘고, 실제로 시청율 또한 50%를 넘어가고 있다.
광고인으로서 부럽기 그지없다. 광고도 저렇게 열광적으로 봐주었으면, 둘만 모이면 어제 그 광고봤어 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기를...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히트광고를 만들고, 화제의 광고를 만드는 광고인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또한 든다. 그런 광고들을 보면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본질’’이다. 본질에 아주 충실하고 있다.
요즘 광고들을 보면 테크닉의 전성시대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본질을 위한 테크닉이 아니라,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이라는 것이 문제다. 더 이상 테크닉만으로는 소비자의 시선을 빼앗을 수는 없다. 소비자의 마음에 와닿는 본질이 있어야만 소비자는 광고에 머물고 제품에 머물 것이다. 이번 11월 광고 중에서 이렇듯 눈에 띄는 몇가지 광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새로운 정치광고들
온 나라가 대선의 열기로 뜨겁다. 11월 광고 역시 대선의 중심에 있는 듯하다. 후보들간의 치열한 광고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1998년도 대선때의 정치광고와는 많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캠페인화가 아닌가 싶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신문광고는 오랜 준비기간을 거친 듯 일정한 컨셉과 포맷이 보인다.
이회창 후보의 신문광고는 한마디로 정치 그 자체로 보이며, 공약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주로 이루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광고를 보면 좀더 감성에 어필하며, 서민들의 속마음을 자극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쉽게 말해 하나는 머리를 자극하는 광고요, 또 하나는 가슴을 자극하는 광고라 할 수 있겠다. 얼마전 TV에서 박근혜 의원이 이회창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 것이 보았다. 연설 도중 박근혜 의원은 노무현 후보의 광고에 대해 언급하며, 그것에 대한 반론을 펴고 있었다. 아마도 노무현 후보측의 광고가 국민에겐 어필을 했고, 한나라당은 자극을 받았나 보다. 물론 어느 광고가 더 옳았는지는 12월 19일이 지난 후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 광고의 가장 큰 목표는 제품을 얼마나 잘 파느냐에 달렸으니까...
다시, 신입사원이 되고싶게 한 삼성의 사원모집 광고
내년도 경기전망이 어둡다는 발표가 심심치않게 매스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광고일을 업으로 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보다 더 애가 타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아닌 졸업생들이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직문을 통과하기 위해 저마다 칼을 갈고, 내공의 깊이를 더하지만 취직이 그리 쉽지는 않은가 보다. 그래서인지 이맘때면 늘 광고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사원모집광고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삼성의 신입사원 모집 광고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습니다"라는 헤드라인에 연어 비주얼...아, 이런 식으로도 사원모집 광고를 할 수 있구나! 사원모집 광고라고 하면 으례히 당신의 밝은 미래 어쩌구저쩌구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참으로 의연하면서도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한편의 광고가 아닌가 싶다.
사원모집 광고를 보다보니, 두 편의 고전이 생각나 소개해볼까 한다. 첫 번째는 수많은 영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남극탐험대원 모집 광고이다. 혹독한 여행을 함께 떠날 사람 구함. 쥐꼬리만한 보수. 살을 에는 추위. 몇 달이고 계속되는 칠흙같은 어둠. 끊임없이 찾아드는 위험.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 없음. 다만 성공할 경우에는 명예를 얻게 될 것 -어네스트 샤클론. 그리고 두번째는 과거 리젠시라는 광고회사의 사원모집 광고이다. 때론 가장 솔직한 것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한다.
역시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었다-준 광고
11월에는 우리 곁에 혜성같이 등장한 광고스타가 한 명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얼굴을 보지 못했고, 그 스타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단 하나, 그의(사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준이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SK텔레콤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티저광고를 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준이 있었다’’ 라는 카피와 함께 모델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오른쪽에는 하얀 여백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간간이 티저광고를 한 제품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는 크게 히트를 친 광고 또한 적지 않았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적절히 이용한 광고들, 그 호기심 또한 변하지 않는 본질일 것이다. 광고주로서는 아까운 돈을 쏟아 붓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티저광고들로 인해 본 광고는 효율적인 금액으로도 상당히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몇 년전에 마이클럽닷컴에서 한 티저광고가 있다.
아마 모든 분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리라 생각한다. 거리마다 나붙었던 광고, ’’선영아, 사랑해’’는 아마도 티저광고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AIA라는 광고단체에서 ’’어느 광고인의 죽음’’이라는 신문광고를 당신은 보았는가? 나는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광고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렇게 살다간 우리의 선배광고인이 있었다. 그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왜 광고를 하는가? 나는 지금 어떤 광고를 만들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한 줄 유행어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희뜩한 그림만을 찾고, 재미있는 콘티만을 짜는 당신이라면, 지금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음표를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광고를 통해서 세상을 움직이고, 광고를 통해서 희망을 주고, 광고를 통해서 기업과 소비자가 바른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광고...어느 광고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광고인으로서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