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조원희 영화감독
왜 영화감독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20년 이상, 그리고 왜 영화감독이 됐냐는 질문을 1년간 들어왔다. 그때 그때 상황과 장소, 그리고 생각나는 것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해왔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빈도로 말했던 것은‘아름답고 멋진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어떤 이들은‘섬광과 같은 매료의 순간’을 찬연한 풍광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현란한 액션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언제나 사람의 표정과 포즈에서 찾아냈던 것 같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상을 만들어낼 때, 언제나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람, 즉 배우다. 그래서 수많은 배우들이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광고를 유심히 지켜봐 왔다.
배우들은 영화 작업을 가장 좋아하고 스스로 영화 속에서의 모습을 가장 선호한다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배우들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광고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옛날 심혜진이 최초로 등장했던 순간을 기억해 본다.
20세기를 가득 채웠던 모더니즘적 미녀가 아니라 모던을 넘어선, 굳이 포스트모던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좋을 여성상으로 등장했을 때, 어느 시인이 자신의 시집을 빌어 칭찬했듯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아름다움이 그 짧은 광고 필름에 얹혀져 있지 않았던가.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심혜진이지만, 그 순간의 쾌활했던 표정과 호방한 액팅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최진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십 초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줬던 깜찍함이 결국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이미지로 남았다.
돌고래 소녀 이미지로 광고에 등장한 이후, 내가 언제나 주목하고 있으며 또한 언젠가 그 잠재력이 터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배우가 신민아다. 최근 신민아의 매력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것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광고였다. T.O.P 광고에서 원빈과의 투샷은 어떤 사이즈와 각도로 신민아를 잡아낼 것인가의 해답이었다.
앞으로 내가 신민아와 작업하게 될 영광의 순간이 온다면, 신민아가 래미안 캠페인에서 욕조 앞에 서 있는 장면은 분명 절대적인 레퍼런스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짧은 섬광과 같은 찰나에 그 사람의 매력이 드러나는 것을 목격한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 배우의 마력이 드러나는 섬광과 같은 순간을 아직은 몇 번밖에 목격하지 못한 나로선 그 다이제스트와 같은 광고 필름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