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아름다운 동작
HS Ad 기사입력 2020.11.30 12:00 조회 357
  
  
그날도 나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생각 중이었다.
 
거의 매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나의 버릇 중 하나이다. 하는 생각들은 그때그때 다르다. 내가 죽으면 내 동생이 나를 만나려고 마중 나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자주 한다. 혹시 죽어서도 동생을 만나지 못한다면 또 죽어버리리라는 생각도. 한편 눈동자가 너무 아름다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속으로 만약 이 애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이 아름다운 눈알만 내가 따로 챙겨서 보관하고 싶다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음악을 듣다가도 죽음에 대한 생각에 불쑥 빠진다. 어쩌면 음악이라는 것은 영혼이 돌아가는 집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므로 사실 알고 보면 음악가는 다 목수들이고 다 건축가들이라고. 나는 죽은 뒤에 어떤 음악가의 집으로 입주하면 좋을까, 조빔의 집에서 영원히 나른하게 사는 것도 좋겠다, 뭐 그런 생각들…
 
그날 나는 내가 죽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무척 변덕스럽다는 사실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어떤 날은 죽는 것 따위 조금도 겁나지 않고 아쉬운 것도 없다가, 어떤 날은 죽는다는 게 무섭고 억울하고 끔찍하게 싫어서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기왕이면 죽는 일이 전혀 두렵지 않은 상태일 때 죽게 되면 좋겠다. 하필 죽기 싫어서 겁쟁이처럼 벌벌 떠는 와중에 죽음을 맞는다면 그건 정말 모양 빠지는 임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확히 언제 죽을지, 또한 죽는 일이 언제 두렵지 않고 언제 두려울지는 알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 곤란할 따름이다. 
 
공항이었다. 곧 타게 될 제주도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초코우유를 먹으면서, 태양을 받아 반짝거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비행기들을 뜻없이 눈으로 좇으면서 그런 생각을 시시껄렁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자를 하나 받았다. 
 
그 문자 속에는 지선의 죽음이, 상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담겨 있었다.
 
그 문자에 답장을 하지 못했다.
 
며칠간 각종 기사와 sns에 지선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지만 나는 온라인 공간 그 어디에서도 아무 코멘트를 할 수 없었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하고도 지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지선의 생일이었던 다음 날 그의 카톡에 ‘지선아. 생일 축하해.’ 하고 메세지를 남긴 것이 전부였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잤다. 깨어있을 때는 잠이 올 때까지 sns 피드를 새로고침하면서 지선의 생전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책을 읽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달리지도 않고, 요가를 하지도 않았다. 
 
평소에 늘 잔잔하게 발목이 아파서 그것이 이틀에 한 번 달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달리지 않으니까 이상하게도 발목은 더 많이 아파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밤늦게 요가원에 찾아갔다. 
 
잘 오다가 갑자기 최근 왜 오지 않았냐는 원장님에게 추워져서 그런지 요새 좀 게을러졌다고 둘러댔다. 원장님은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했다.
 
“오래 다닌 분이에요. 근데 요즘 집에서 통 안 나오시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대요.”
 
잘 모르겠다니. 듣고 보니 그것은 내가 찾던 대답이었다.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원장님에게 ‘저도 그래요.’ 하고 말했다. 네? 하고 돌아본 원장님에게 나는 다시 말했다. 
 
“실은... 저도 요즘 그분처럼 지냈어요. 오늘도 발목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냥 집에서 누워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도 정말 잘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원장님은 내 발목을 봐주시려던 계획을 그만두고는 갑자기 맥주를 사오고 과일을 깎았다. 우리는 요가매트 위에 앉아 새벽 두 시까지 별말 없이 맥주를 마셨다. 
 
 
여느 때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계속 새로고침하면서 핸드폰만 몇 시간째 들여다보다가 지인의 전시를 발견하고 나갈 채비를 한 것은 포스터에 그려진 어항 속 물고기의 알 수 없는 멀뚱한 외로운 모습이 반가워서였다. 
 
종로의 한 빵집에서 주전부리로 먹을 수 있는 빵을 선물로 여러 개 사서 가슴에 안고 택시를 탔다. 전시장이 있는 을지로까지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그 사이에 졸았다. 다 왔다는 기사님의 목소리에 정신없이 내려서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으슬으슬 추운 기운을 느끼며 음식점과 겸하고 있는 전시장 문을 여니 기름에 오래 볶아진 마늘 향이 온기와 함께 훅 끼쳤다. 향긋하고 따뜻한 음식 냄새를 맡으니 어디 구석에 앉아서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입장료 대신 음료를 하나 시키면 된다고 해서 시그니처로 보이는 음료를 따뜻한 것으로 주문하고 안내에 따라 한 층 위로 올라갔다. 각각의 공간 안에 홀로 깊이 침잠해있는 물고기들이 어둡고 휑한 공간에서 나를 맞았다. 
 
 
거울의 방 같았다. 
 
이 슬픔은 끝끝내 개인적인 것이라는 체념 때문이었을까. 이 슬픔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를 찾을 자신이 애초부터 없어서였을까. 이 슬픔이 타인에게 어떤 쪽으로든 해석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걸까. 
 
아무하고도 내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채 방에 혼자 멀뚱거리고 앉아있었던 나를 마치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는 그림들. 
 
나 같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을 것이다. 여기 오자 그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홀로 가만히 숨쉬며 본인도 파악이 안 되는 슬픔의 감정을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이 아마 이 거리에 자기 방 불을 겨우 켜두고 앉아있을 것이다. 
 
 
물고기의 풍성한 지느러미와 꼬리가 물속에서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래, 물 안에서 사는 존재들을 볼 때마다 이 움직임이 그렇게 아름다웠어. 이것이 참 아름다웠어... 그런데 이 움직임은 결국 이들의 생활이 아닌가. 이들은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춤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걷고, 자고, 먹고, 친구들과 무리 지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가며 노는 하루의 생활, 하지 않으면 생이 끝나는 기본의 몸짓이다. 
 
내가 잠시 손 놓고 있던 생의 동작들이 생각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 운동복으로 갈아입던 동작, 음악을 플레이하고 달려 나가던 동작,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빵을 굽던 동작,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밑줄 그어가며 읽다가 스르르 잠들던 동작... 
 
 
갑자기 좀 전에 주문해놓은 음료가 생각났다.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오니 카운터 앞 바에 음료가 놓여있었다. 주문과 달리 차가운 음료가 나와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커피 위에 두껍게 얹혀있던 생크림을 작은 스푼으로 성실하게 둠뿍둠뿍 퍼서 입에 넣었다. 오랜만에 힘을 내서 해본 나의 아름다운 동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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