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6년이 VR의 원년이 될 거라 많은 이들이 예상했었다. 이제 올해가 한 달 남짓 남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VR이라는 뉴미디어가 도래한 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현재 현업에서 광고 및 상업적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피부로 와 닿는 확실한 변화를 느끼고 있다.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VR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기술을 자신들의 제품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지금의 분위기에 휩싸여 일단 뭐든 VR로 만들어보고 싶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현재 정부도 나서서 신성장산업 지원책으로 VR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겠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는 상황. 너 나 할 것 없이 VR이라면 모두가 덤벼들고 있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그럼 광고라는 매체의 성격과 VR은 어울리는 것일까?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앞으로 더욱 폭발적으로 커머셜 성격을 띤 VR 콘텐츠는 증가할 거라 예상한다. 그 말은 고로 VR 기술의 특성과 광고가 매우 적절히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 게임 시장을 필두로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VR 생태는 아마도 광고라는 포맷
과 완벽히 융합되는 순간 게임 이상의 엄청난 파급력이 있는 커머셜 매체의 한 부분을 차지하리라 예상된다. 그건 아마도 현재의 소비자들의 성향과 관련이 있는데 과거의 수동적 수용의 대상이 아닌 적극적 참여의 대상이 된 소비자의 성향과 VR의 성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기술의 발전에 의 한 시대의 변화라기보단 시대의 요구에 의한 기술의 발전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현재 VR 커머셜 콘텐츠는 단순히 오락적인 기능을 넘어서 가상의 공간 속에서 능동적으로 제품을 보고, 선택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까지 할 수 있는 실제 가상의 마켓의 형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말 그대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새로운 생태계로 발전될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저 말로만 들었을 때는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에 의해 현실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럼 지금의 분위기를 낙관하며 모두가 과잉되는 시장의 분위기에 편승하는 게 맞는 것일까? 절대 그럴 수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VR도 역시 VR에 맞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이 생태계가 확고히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3D 산업이 3년도 채 못 돼서 사양길로 접어든 이유가 3D에 적합한 콘텐츠의 부재였음을 상기해 볼 때, VR 역시 그 수순을 밟지 않으리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AR이 ‘포켓몬고’의 열풍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듯이 광고 시장에서도 역시 VR 기술을 이용한 킬러 콘텐츠 개발이 새로운 시장 형성에 필수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
그럼 광고에 VR 기술을 잘 활용한다는 건 무엇일까? 이 논지는 VR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이들의 가장 큰 화두이자 아이디어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기술을 위한 콘텐츠가 아닌 콘텐츠를 위한 기술로써 VR이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매우 혼동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그저 VR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목적성으로 접근하니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이 일반적인 광고 영상으로 만들어도 무관한 방향성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분명한 건 VR에 맞는 콘텐츠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광고를 VR로 구현하는 데는 아직 한계치가 존재한다고 본다.
VR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자유도’의 범위를 설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이 콘텐츠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부여할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얼마큼의 디렉션이 가미될지를 판단하는 부분이다. VR 안에서의 자유도라는 것은 사실상 소비자들이 인지 못하는 연출자의 디렉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상의 공간 속 360도를 모두 볼 수 있는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마치 자신의 의도인 양 제품을 보게 만드는 것, 그게 마치 자신의 능동성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VR 커머셜 콘텐츠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하지만 광고가 가지는 일반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클라이언트들 또는 소비자 역시도 이런 자유도는 오히려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무조건적인 VR 기술의 활용보다는 제품이 가지는 성격과 마케팅 전략 등 모두가 합치되는 그 순간 좋은 커머셜 VR 콘텐츠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연출자들 역시도 VR을 이용한 소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 주위의 많은 영상 감독들이 VR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감독들이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차원적 이미지에 적응된 영상 제작자들에게 3차원 이미지라는 건 모든 게 난제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현재 VR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제작 여건 자체가 아직 2차원적 이미지를 만드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불고 있는 VR의 열풍에 비해 실제 제작 여건은 여전히 2D 영상제작 기반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상제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부분까지도 VR에서는 큰 숙제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컷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 이미 나와 있는 많은 VR 콘텐츠들이 컷이 없는 영상들이 많다. 다시 말해 원씬 원테이크인 영상들인 것이다. 그 이유는 소비자가 커팅 포인트에서 연출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에 시선을 두고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항상 연출자가 원하는 방향을 보고 있으란 장담을 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자유도에서 발생하는 난제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VR 영상이 원씬 원테이크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영상보다는 치밀한 계획에 의해 또는 기법을 이용해 커팅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자유도에 대한 범위 설정 역시도 치밀한 콘티 구성으로 만들어진다. 자유도는 프레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집중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광고에서 이런 부분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하도다. VR 영상을 제작하면서 프레임은 제약이 아닌 보호막이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특히나 현장에 나가면 더 많은 문제점에 봉착한다. 기본적으로 조명은 어디에 숨겨야 할지, 카메라 이동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그래서 필자의 개인적인 방법은 VR 슈팅 콘티를 만들 때 항상 전체 공간 맵을 만들어 첨부하는 것이다. 콘티라는 평면의 이미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프레임의 한계를 공간 맵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필자는 현재의 VR 제작 수준이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기술력은 발전할 것이고 현재의 난제들은 하나둘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을 것은 VR을 이용한 연출자의 크리에이티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매체들이 개발되고 등장할 것이다. 또한 그 매체들이 광고와 융합되어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문화의 새로운 한 축이 될 것이다. 급변하는 광고시장의 현업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새로운 매체들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산업의 형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어쩌면 필름메이커의 책임이자 의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