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하는 동안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지 않은가?
바로 “차별화”다. 달라야 기억한다. 광고들이 모두 환상에 빠져 있을 때는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글 | 정상수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오│늘│ 아│침│에│도 차│가│ 없│어│졌│다.
분명히 어젯밤에 여기에 주차해 뒀는데 없다. DVD를 서치로 돌려보듯 머리를 급가동하기 시작한다. 아, 맞다. 여기는 그저께 밤에 주차했던 곳이다. 기억력이 어제보다 나빠졌다. 내일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TV광고를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왠지 광고들이 서로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똑같은 배우 사진을 가지고 가서 성형 수술을 한 것 같다.
상황 설정이 비슷비슷하다. 화법도 비슷하다. 화면의 색감도 비슷하다. 카피의 말투도 비슷하다. 성우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편집기법도 비슷하다. 모델도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광고 속 이야기가 비슷하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모두들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2008년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하나같이 멋있다. OECD 국가의 국민이라서 그런가? 적어도 광고를 보는 순간만은 달러 환율이나 경제 위기 같은 건 싹 잊게 된다. 고맙다, 광고야!
하지만 광고를 하는 동안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지 않은가? 바로 “차별화”다. 달라야 기억한다. 광고들이 모두 환상에 빠져 있을 때는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최근 광고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현실이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상 속의 삶이 이제 지겨워졌고 그 환상이 실제로는 지방을 흡입하고, 피부를 이식하고, 보톡스 주사를 맞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 만큼 우리는 약아졌다.” (머나 블라이스, 미디어 스트레스 탈출법, 리더스 다이제스트, 2005.5)
그렇다. 요즘 광고에서 진짜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광고가 우리에게 나쁜 이야기를 할 리는 없다. 무언가를 전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달라야 산다. 그래야 기억에 남는다. 평범한 우리는 100평도 넘어 보이는 아파트에 살지도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호주에 다니지 못 한다.
하늘거리는 시폰으로 만든 옷을 입고 대형 냉장고에 기대 서 있지도 않는다. 헬스클럽에서도 카메라 보며 몸을 비비 꼬며 운동하지 않는다. 화장품 바를 때도 그렇게 꿈꾸는 표정으로 예쁜 척 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다.
자동차도 그렇게 난폭하게 운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꿈을 주려는 것은 좋다. 하지만 떠 있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도 좋을 때다. 진짜 이야기를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의 브랜드에 대해 더욱 더 꿈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 “광고 똑같이 만들기 협의회”에서 탈퇴하자. 그래야 다르게 보인다.
비슷비슷한 광고들 속에서 진짜 이야기로 말을 건네서 눈길을 잡는 광고가 있다. 바로 <모닝케어>다. 우선 음악으로 딴 짓 하고 있던 나의 고개를 TV로 돌리게 했다. 바비 킴이 특유의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돌아보게 한다. 화면의 색감도 다르다. 빛바랜 옛날 영화 같은 느낌이다. 지하실에 오래 묻혀 있다가 새로 발굴한 낡은 필름이다. 그래서 예쁘고 멋만 부리는 광고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60년대 외화 자막용 글씨도 독특한 느낌 살리는 데 한 몫 한다.
무엇보다 잘 한 것은 소비자 인사이트(insight)의 발굴이다. 이 광고 드라마의 주인공은 “날마다 사표 쓰는 남자”보다 한 수 위다. 다짜고짜로 “사표를 날려라!”라고 외친다. 그러나 사장님이 듣기 전에 바로 “내일 아침까지만”이라며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보통 사람인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진짜 이야기다.
“내일 아침 새 사람 되면 된다”는 각오도 잊지 않는다. 인사이트가 듬뿍 담긴 인상적인 뮤직비디오 한 편이다. 술에 만취한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술값을 모두 계산하여 다음날 아침 영웅이 된 정준호의 출근길이 생각난다. 역시 만취하여 경찰차에 타고 집에 가면서 운전하는 경관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다가 혼나던 일도 생각난다. 옥에 티는 중간의 인서트 장면. 진한 드라마를 연출하다가 갑자기 호흡을 끊어 감상을 방해한다. 버스 셸터의 모닝케어 광고를 쓰다듬는 여성이 꼭 필요했을까? 재미있는 드라마에 빠져 들고 있는 내게 갑자기 “아이, 이거 광고야”라고 말을 걸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브랜딩을 위한 장치는 꼭 필요하지만, 그냥 광고판 인서트로도 충분했는데…
<푸르덴셜 생명>도 진짜 이야기로 말을 건넨다. 습관대로 자장면 시키는 아들에게 호기 있게 탕수육 시켜주고, 커서도 삼겹살 시키는 아들에게 꽃등심 시켜주는 아버지. 실제 생활에서 ‘과연 몇 분의 아버지가 그러실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과장 치고는 귀여운 과장이다. 그래서 밉지 않다. 잠시 후 보험회사가 드리는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게 돼도 과히 기분 나쁘지 않다.
“당신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라는 카피도 기분 좋다. 꼭 보험에 들지 않더라도 좋다. 가장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이야기다. 동시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슬그머니 다지게 한다. 상당히 뛰어난 카피라이팅 기술이다. 카메라를 노려보며,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 보험비용을 알려주며, 우리를 용의자처럼 다그치는 방법도 효과가 있겠지만, 이것이 더 뛰어난 기술임에 틀림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라. 사람이 그렇게 빨리 죽지 않는다. 그리 쉽게 암에 걸리지도 않는다. 사망자 통계나 사고 뉴스를 보는 순간은 공포심이 생기지만, 기억력이 점점 나빠지므로 금새 잊고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는 이처럼 넌지시 말을 건네는 것이 세련된 방식이다.
영국의 <존 행콕> 보험 광고의 카피는 “생각보다 오래 살 때를 위하여”다. 연기는 약간 어색하지만 깔끔한 연출이 돋보인다. 아울러 불필요한 잡음 없이 말끔하게 된 동시녹음도 리얼리티를 잘 살리는 데 기여했다. 옥에 티는… 없다.
성형수술 한 것 같은 광고들…우리는 왜 다를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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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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